카이사르는 황제에 즉위했었는가요? 황제가 아니였다면 그의 공식적인 직함은 무엇이었는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현재의 기준으론 황제와 다름없는 권력을 가졌지만애초에 카이사르 생전엔 황제(Emperor.)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황제라고 불리지 않았던 겁니다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로마개혁을 마친 뒤, 자기가 자기를 종신독재관에 취임시키며임페라토르(imperator, 최고사령관)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이 임페라토르가 훗날의 엠페러(Emperor.) 로 바뀐 것이죠좀 더 자세히 적자면고대로마는 독재로 인한 암흑기를 거친 적이 있어서 그때까진 독재자를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아예 독재 정권을 제도적으로 완성해서 최초의 확실한 황제로 인정받는1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조차 스스로를 황제 대신 제1의 시민(Princeps, 프린켑스)이라고 불렀습니다4대 황제인 클라이디우스 시대가 되서야 아우구스투스 또는 카이사르 Caesar 가 황제란 뜻의 단어로 쓰였으며황제의 권력기반이 로마 상비군 대장이란 점 때문이었기 때문에임페라토르또한 황제를 칭하는 단어가 되었고, 사람 이름이랑 안헷갈리게 이쪽이 정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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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주요 모스크나 신전등에서 동물이나 사람을 형상화한게 금지된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슬람은 우상숭배 금지라는, 기독교에선 사실 반쯤 버려진 조항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역사 기록적인 의미로 그림을 그릴 때도무함마드의 얼굴은 철저하게 가려서 그리며모스크에도 우상으로 지적될만한 모든 요소를 다 제거하고기하학적 무늬나 문장으로 장식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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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폐의 인물은 다 조선시대의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실5.16군사 쿠데타 1주년에 발행된 100환짜리에 누군지 모를 모자가 그려지거나초기 이승만 정권때는 모든 화폐에 이승만이 그려졌었으니다 조선시대 인물인건 아니지만, 조선사람이 제일 많은건 사실이죠지폐에 고려이전사람은 커녕 독립운동가 분들 조차 없다는 점은여러 사람들이 광복 직후 부터 지적하던 부분입니다일단 한국은행의 공식적인 의견은"여러 전문가를 초청하여 가장 유명하면서도 호불호 없는 인물을 선정한 결과고려이전은 자료가 부족해서 고를 수가 없고 독립운동가는 정치적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이건 사족이지만지금의 지폐 3종(1천 5천 1만)그림은 박정희 시절에 정착된 것인데그때 당신 반공,민족단결의 명분으로 단군영정을 비롯해서 여러 "초상화 없는 위인"의 그림이 그려졌는데고증에 관해서 비판이 많지만이미 그려진 그림이 이미 있는데 새 그림만드는건 제작비도 배포비용도 엄청 많이 들 거라서예산 낭비라서 그냥 쓰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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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때 금속이 충분 했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금속은 단단하고 광택있는 모든 물질을 뜻하기 때문에금속을 대신하는 물질은 현대에도 없습니다만"철" 이란 뜻으로 금속을 쓰신 거라면미국이나 소련같은 예외를 빼면 모든 나라가 안충분 했습니다그래서 영국, 프랑스 등은 식민지에서 공수했고일본이랑 독일은 재활용을 극한으로 진행했습니다물론 모든 나라에서 신소재 개발도 진행했구요예를 들어 비행기의 주재료인 금속 알루미늄은 1차대전 기에 이미 양산법이 확립 되었지만그래도 부족해서 비행기에 최우선으로 사용되서 전차 장갑으로 활용되는건 세계2차대전 끝난 뒤에야 연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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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작곡이라는것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세계에서 역사 시작하기 전부터 노래를 만들었고문자를 만든 문화권은 당연히 음악도 문자로 기록하려 했으니기초적인 작곡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그러니 작곡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단 거죠다만 작곡만 해서 먹고사는 존재는 유럽에는 없었습니다질문에 적어주신 분들 전부 연주도 하고 지휘도 했으니음악가라 하는게 타당하겠죠조선시대는 아예 겸직이 정부의 주요 정책 이었기 때문에음악으로 먹고 살았단 의미로는 음악가가 존재하지 않지만학문적으로 음악을 연구하는 선비들은 많았습니다대표적으론고려음악을 보존한 김성기. 정간보(학교에서 단소배울때 배우는 그거)를 만든 박연판소리 이론가 신재효, 악학궤범을 쓴 성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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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먹는다는 말이 어째서 헛수고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기서 쓰이는 물먹다는 액체를 마신단 뜻이 아니라아예 따로 있는 독립적인 단어입니다 [물먹다] 로 한덩어리라서물을 먹었다X 물먹었다O 입니다어원에 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1 물에 빠져서 물먹고 고생하는 것2손님접대 라고 하면 밥, 하다못해 주전부리라도 주는게 기본인데이런 식의 먹거리말고 물만 준다는건"너는 내가 대접할 가치도 없다" 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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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서 대순은 왜 정통왕조로 인식하지않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자성이 수도를 장악하긴 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도만 겨우 먹은 것 입니다이자성의 난은 명이 청과 전쟁하고 있던 사이에 뒤통수를 쳐서 북경을 먹을 수 있었던 건데북경 함락 직후 군기가 풀어져서 병사들이 무한 약탈에 돌입했고이걸 본 지지세력이 모두 등을 돌렸기 때문에점령한지 1년 조금 너머서 바로 망했죠겨우 1년 가지고는 치세 비슷한 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그냥 엄청 큰 약탈에 불과해서 나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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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나스카 지상화에 담긴은 의미를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스카 지상화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애 대해선 아직도 수수께끼에 쌓여 있습니다그 근처엔 역사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일단 제작 자체는 생각보다 쉽다고 결론이 나왔지만왜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을 굳이 엄청 크게 그렸는지 부분이 의문이라서페루에 비행장치, 그러니까 열기구 같은게 있었다 설 부터우주인설 까지 매우 다양한 이론이 나왔습니다현재의 주류 가설은나스카 한군대서만 지상화가 있는게 아니라팔파 지상화, 카자흐스탄 지상화, 어핑턴백마 등등 다른 지역에서도 지상화가 발굴 되는 것을 볼때나스카지상화는 기후특성 상 더 잘 남아있을 뿐 지상화개념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었으며아마도 종교적인 상징이라는 것 입니다하늘=신 으로 생각하는건 모든 원시종교의 공통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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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자신은 황제에 오르지않은 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의 조조가 거병한 직후부터 조조밑에서 일한 순욱조차조조보고 한나라 버리냐고 따지다가 진짜 버릴꺼 같으니까 자결했습니다조조의 생전엔 아직 한나라의 정통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여러 명사들이 한나라 황실에 충성 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조조 본인도 헌제를 조종해서 정치적으로 일을 꾸몄고유비도 한나라 부흥을 명분삼아서 세력을 키웠죠그런 상황에서 조조가 황제가 된단 것은자기 명분 버리면서 유비 명분 몇십배로 불리는 행동이라서정말 황제 하고 싶어서 순욱 앞에서 간보기 까지 했지만결국 죽을 때까지 본인이 황위에 오르진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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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가 대항해시대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후추가 제일 유명하고 비싸긴 했지만그냥 맛있는 향신료면 다 포함됩니다.마늘,커피,후추,계피 등등등 전부 다요서양은 오래도록 고기위주 식단을 가지고 있었지만식문화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별로 발달 하지 않았으며15세기는 귀족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해서귀족들은 모두가 "내가 특별하다" 라고 자랑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신비롭고 머나먼 장소 동양에서 수입한 특별한 물건이무려 고기 맛이 몇배로 좋아지는 실제 효능도 있으니엄청나게 유행한 것입니다.귀족들이 쓸데없는 것에 돈 팍팍 쓰는 것은 당시엔 굉장히 흔한 일로예를 들어 영국에선 오이가 비싸다는 이유 하나때문에오이 샌드위치(빵에 오이만 끼워넣음)같은 매뉴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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