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에게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을 듯합니다. 영국을 제외하고 전유럽을 석권하고 러시아 정벌에 실패했지만, 공화정을 뒤엎고 황제에 오른 애증의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의 영광스런 날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군인이자, 프랑스를 일깨운 정치가의 모습, 그가 보여준 육군의 개혁과 리더십이 그의 영광의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영국해군에 밀렸고 대륙봉쇄령을 내렸지만 이를 어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해 유배되었고 재차 복귀를 시도하지만 연합군에 패배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모습도 있습니다. 그의 축출 후 유럽은 나폴레옹 이전으로 돌아가 보수적인 체제가 형성됩니다.
Q.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는데 왜 인도에서 흥하지는 않았을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도에서 카니슈카 왕이나 이소카 왕 때에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육성하였으나 인도에서는 불교는 자리잡지 못했으며, 오히려 불교는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동북아시아에서는 대승불교가 크게 유행했으며, 뱃길을 통해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어 소승불교가 유행하였습니다.인도에서 불교는 기원전 6세기 경 성립하는데, 이미 토착종교가 자립잡고 있었는데, 브라만교가 그것입니다. 브라만교는 드라비다족의 원주민을 정복이주한 아리안족의 정복을 정당화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카스트라는 신분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 브라만교는 베다라는 경전을 갖고 있고, 다신교였습니다. 이 브라만교를 뿌리로 후에 힌두교가 탄생하는데 힌두교도 다신교입니다. 인도는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기 토착신앙을 갖고 있었는데, 이 힌두교는 토착신들을 다양하게 흡수한 포용력이 강한 종교입니다. 이에 반해 불교는 보편종교의 모습을 갖추고 다양한 토착신을 인정하지 않았죠. 힌두교에서 부처도 하나의 신으로 섬겨질 정도이니 인도에서 토착성과 포용성, 역사성 등에서 불교를 압도해왔다고 보여집니다.
Q. 오래전 선조시대때의 여성의 인권은 어땠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권은 근대 시대에 들어서면서 확장되면서 확립되어 왔습니다. 영국에서도 투표권이 가장 나중에 인정받은 것을 보면 서양에서도 여성 인권은 꽤나 늦게 인정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성에게 참혹한 전쟁을 통해서 인정받았는데, 세계대전에 남성들이 전장에 나가 생산활동에 여성들이 투입되어 전후 투표권을 인정받은 경우죠.이러한 사정이니 조선시대 여성인권과 운동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뛰어난 여성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성 그 자쳬보다도 누구의 어머니로서 기억되고 평가받았는데, 신시임당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양반사대부들어게는 그녀의 뛰어남 자체보다 율곡을 잘 키운 어머니가 가장 인정받았으니까요.오히려 조선시대보다는 고러시대에 여성이 더 존중받았는데, 상속권과 이혼 뒤 재산분할, 남성의 여성가족으로의 입적 등 여성들이 유교문화 속 억압받은 존재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과 같은 여성인권은 아니지만요.
Q. 우리나라에 여러왕들이 있었는데 그중 대왕은 무슨업적으로인해 대왕이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가 중종, 성종, 세종 이렇게 부르는 것은 각 왕의 사후에 신하들이 전왕의 업적 등을 고려해서 정해진 시호입니다. 생전에는 다같은 왕이죠. 다만 역사적 영향력과 업적 등을 후대 역사가들이 평가해 대왕이라고 붙이는 것입니다.대왕칭호를 받는 경우는 아주 적은데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정조대왕이라고 칭하는 사례도 나오는 추세입니다. 광개토대왕은 광개토라는 칭호에서 보이듯 엄청난 영토확장으로 그리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성군이자, 조선 전기 문화의 절정을 이끈 분이라 대왕칭호를 받고 있습니다. 정조대왕도 세종과 비슷하게 조선후기 문물을 정비하고 꽃피운 업적으로 대왕 칭호를 얻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