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가 가장 늦게 고대국가를 형성하는데, 이는 중국의 선진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 탓이 컸습니다. 고구려는 중국과 육로로 교류가 용이하고, 백제는 해로로 교류하기가 좋았던 반면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친 신라는 교류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나 백제를 통해 중국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토착문화, 전통문화가 오랫동안 강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왕의 칭호가 다양하고 중국식의 왕을 6세기 지증왕 대에야 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왕의 순인데 거서간은 큰 족장, 차차웅은 제사장, 이사금은 큰 이빨 정도, 마립간은 족장 중 으뜸 이런 의미였습니다. 토속적, 토착적 삭채가 매우 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