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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곤잘
라울곤잘23.03.09

조선시대 역사상 최악의 역병은 무엇인가요?

조선시대에 일어난 역병중에 역사상 최악이라고 불리우는 역병은 언제 무슨 병이였나요?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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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0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역병은 콜레라, 두창,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역병으로 유행했고, 가장 최악의 역병은 콜레라와 두창였다고합니다.

    이런 역병은 무시무시한 존재로 다가왔으며 역병(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역병을 피하기 위해 도망 쳤다고합니다.

    전염원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탈출을했다고 보시면 될거같습니다.

    역병 유행이 심한 곳은 주민 90% 이상이 살기 위해서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다고.

    아예 마을은 사람이 없다시피 했고 당연히 관의 업무도 마비될 정도였다고합니다.

    이렇게 역병이 퍼지면 그냥 도망을 친 이유는 당시 조선 의학 수준이나 구료 대책이 역병에 매우 무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821년 기록에만 보더라도 의약의 효과가 없고, 구할 방도가 없다.

    전염하는 것이 거센 불길과 같아서 치료할 방법이 없다.

    옛 처방이 전혀 없으니 의원조차 어떤 증세인지 모른다라고 적힌 기록을 보면 얼마나 조선시대 때에 역병에 무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정부가 아예 역병에 대해서 손을 놓지는 않았다고합니다.

    서울에서는 역병이 돌면 한성부가 역병 환자나 죽은 주검을 적발해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혜민서나 동서 활인서에서 역병으로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다고합니다.

    광희문, 소의문 밖 두 곳에 세워진 ‘동서 활인서’가 역병 관리를 맡은 조선 정부의 주요기관이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 동서 활인서는 병자에 대한 치료보다는 굶주린 백성에게 ‘죽’을 제공하여서 죽지 않게 하는데 초점이 옮겨지게 되었다고합니다.

    역병이 유행하면 도망을 치거나, 병 걸려 죽은 자를 성 밖에 묻거나 하는 방식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방식들이었으며 조선시대 의학수준이나 국가의 대책은 역병에 관해서 정말 무력했다는것을 알 수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8대 현종때 기근과 함께 전염병이 돌아 약 100만명이 사망한것으로 추정되고, 19대 숙종때는 141만여명, 영조때는 50-60만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는 의술이 발달되지 않아 정확한 원인을 몰랐지만, 경험상 감염자와 비 감염자를 격리 했고, 환자를 배불리 먹여 병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쉽고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천연두입니다.

    천연두가 가장극성을 부려서 사람들을 모두 휩쓸ㅇ어 버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얼굴이 곰보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확한 년도로 보기는 어렵지만, 이 논문인가 자료를 참고 하시면 좋으실 듯 합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527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몇 차례 대규모 전염병이 있었습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일어났던 역병은 청렴사 식민속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청산리 역병 입니다. 이 역병은 1711년부터 1712년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조선 시대의 전 인구중 10% 이상이 사망하는 대규모 재앙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최악의 역병으로는 천연두가 있습닌다.

    마마라고 하는 천연두는 당시 조선시대 재앙으로 100명중 20명은 천연두에 걸릴 정도로 극악의 발병률을 가지고 있었고, 사망률도 높아 조선시대 사망자 반이 천연두고 죽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역병 조문에 따르면 1392년부터 1864년까지 조선에 1400여건의 역병이 있었다고 하며 500년 조선왕조 내내 수많은 역병이 있었고, 전염병이 발생하면 조선시대 도성 내의 환자를 구하는 업무를 보던 활인서나 의약과 일반 서민의 치료를 맡던 혜민서를 통해 약제를 지급했지만 약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전염병에 걸리면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다니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또, 왕은 감염자들을 일정 지역으로 강제 격리해 전염병이 잦아들기를 바랐고, 하늘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기도했으며 전염병이 의심되는 사람을 무인도나 물속에 넣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치료보다 확산을 막기 위한 적극 거리두기로 전염병을 대처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최대 역병은 홍역이 었던것 같습니다 1786년 정조 10년 4월 한양에 홍역이 유행할 조짐이 보였을때 정조의 대응을 보면 얼굴에 붉은 발진이 나타나는 홍역은 17세기 중반 이후 10~ 20년을주기로 계속해서 조선에서 발생한 공포의 전염병이었다고 합니다. 1668년 현종 9년 첫 대유행이 보고됐고 1707년 숙종 33년에는 무려 수십만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합니다. 또한 1730년 영조 6년에는 서울에서만 사망자가 1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에서 가장 무서워했던 역병은 홍역이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최고의 역병으로 보면 대표적으로 장티푸스와 콜레라,두창 등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천연두를 마마신이 환자 몸에 의탁해서 강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마신에

    걸린 아이는 단순한 아이가 아닌 신이

    깃든 존재로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 모셔졌다.

    마마신의 심기가 불편해질까봐

    집안에서는 저마다 지켜야 할 금기가

    있었고, 만약 지키지 않으면 마마신이

    화가 나서 환자를 죽인다고 믿었다.

    특히 지켜야 할 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미 마마신이

    강림했기 때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마마신이 화가 나서 환자를

    죽인다고 생각했다.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사실에 기인하여 연구에 매진한

    끝에 종두법을 발견,

    시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k스피릿


  •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 발생한 역병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1636년부터 1637년까지 일어난 '병사리병'이라는 역병입니다. 이 병은 조선시대의 대규모 전염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었으며, 역사상 최악의 역병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병사리병은 현재의 전염성 호흡기 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으며, 초기 증상으로는 발열, 기침, 구토, 복통 등이 나타나고 이어서 폐렴과 같은 호흡기 증상, 심장막염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으며, 그 규모는 최소 40만 명에서 최대 1,000만 명까지 추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시대는 의학 기술이 미처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대규모 역병에 대한 대처 방안이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역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현대적인 의학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당시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 조건과 생활 습관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을 내에서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격리, 소독, 자가격리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조선 왕조는 국가적으로 의료 및 위생 시스템을 구축하여 역병 예방에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의료 기술과 환경 조건이 좋지 않아서 대규모 역병은 여전히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현재의 전염병 대응 및 예방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