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사에서 양귀비를 자질풍염 즉 체구가 둥글고 풍만한 느낌의 미인이라 묘사했고 양귀비 이전에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인 매비가 양귀비를 일컬어 비비(살찐 종년) 이라 욕했다는 일화를 보아 가냘픈 체형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는 음식이 귀했던 시절이라 살이 찔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신분이 높았기 때문에 통통함이 풍요와 부유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당나라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주해 살던 지금으로 치면 미국같은 다민족, 다문화국가였기 때문에 중동의 영향을 받아 통통한 체형이 인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