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을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이유?
미국이 일본의 다른 여러 대도시들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에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표선정위원회에서 두 도시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표 선정 위원회는 자신들의 일이 매우 어려운 업무라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당시 일본에 "더 이상 폭격할 만한 대상 도시가 거의 없다."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도쿄를 비롯해서 오사카, 나고야, 고베 등 좀 그럴 듯한 군사 목표가 있는 일본의 주요 도시는 커티스 르메이의 제21폭격기사령부 휘하 수백 대의 B-29들이 들이닥쳐 소이탄과 고폭탄을 가리지 않는 공습으로 이미 싹 다 불태워버린 뒤였기 때문입니다.
목표 선정 위원회는 일본의 남은 도시를 뒤지고 뒤져 겨우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히로시마였으며, 이어서 4개 도시, 즉 고쿠라(현 기타큐슈), 요코하마, 니가타, 그리고 교토가 추가되어 총 5군데의 우선 폭격 목표가 정해졌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목표 선정 위원회는 대상 도시를 다시 AA, A, B의 3개 등급으로 구분했다고 합니다. AA 등급, 즉 최우선 목표는 교토와 히로시마, A 등급은 요코하마와 고쿠라, B 등급은 니가타였다. 즉, 히로시마는 원래부터 최우선적인 원자폭탄 폭격 목표지였습니다. 참고로 '도쿄의 일본 천황 황거에다 원자폭탄 한 방 먹이면 바로 전쟁 끝나는 것 아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목표 선정 위원회는 '황거는 다른 어떤 목표보다 명성이 높지만 전략적인 가치는 가장 작다'고 일축했다고 합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5년 미국 지도부는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투하할 후보지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1차 후보지로 추천된 곳은 히로시마, 교토, 니가타, 고쿠라였는데 이들 도시는 그때까지 폭격을 당하지 않았으며 軍 시설이 있었습니다. 스팀슨은 교토를 제외시켰는데 본인의 신혼여행 때의 좋은 인상도 한 이유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정신이 담긴 이 도시를 파괴하면 민심이 이 흉흉해져 전후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고 합니다. 원폭 투하지 선정위원회는 제외된 교토 대신에 나가사키를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자폭탄 2개 떨어뜨리기 전까지 미국은 일본인이 거주하는 도시 67개를 공격하였습니다. 미국 영국 중국 등이 참석한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종용했으나 설득에 실패하자 1945.8.6일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히로시마에 8.9일에 원폭 펫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함으로써 원폭투하 초기 2개월에서 4개월 동안 히로시마에는 90000명에서 166000명이 죽고 나가사키에서는 60000명에서 80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나가사키 원폭투하 7일후인 8.15일에 일본군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게 된 것은 일본군 제 2 사령부이면서 동시에 통신과 병참기지였으므로 일본군의 주요 기지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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