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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후사를 두기 위해서 자제위로 하여금 자신의 비들을 같통하도록 했고, 그 이후 자제위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이를 알게된 최만생과 홍륜 등이 공민왕을 시해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공민왕의 재위 후반기의 문제점 중 일부입니다.
1372년(공민왕 21) 10월, 공민왕은 세가의 자제들로 자제위를 구성하고 궁중에 배치했다. 김흥경[고려](金興慶)이 이를 총괄했으며, 홍륜(洪倫), 권진(權瑨), 한안(韓安), 홍관(洪寬), 노선(盧瑄) 등이 이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자제위는 요동 문제를 둘러싼 명과의 긴장관계 및 왜구 침구로 인해 무장들의 세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왕의 신변을 보호하고 국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기록은 노국대장공주 사망 후 공민왕이 남색을 탐하게 되면서 이들을 가까이 두어 음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이나, 후사를 두기 위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비들을 간통하도록 했다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는 1374년(공민왕 23)의 공민왕 시해로 이어지게 된다. 공민왕이 환관 최만생(崔萬生)으로부터 홍륜과 간통한 익비의 임신 소식을 듣고 입막음을 위해 이들을 죽이려 하자, 최만생과 홍륜 등이 역으로 공민왕을 시해한 것이다.
출처: 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