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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낙타174
순수한낙타17423.06.16

헤이그특사가 실패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종이 일제에 만행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특사를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부에서 정보가 세어나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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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그특사가 실패한 이유는

    미국정부의 입장이 일관되게 친일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로 인해 모든 교섭을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미국의 냉담한 반응에 실망한 고종은 다시 세계열강을 상대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고 열강의 한국문제 개입을 호소하는 비밀외교를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른 냉혹한 국제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정의와 원칙에 따라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일제가 고종을 비롯해서 각료들을 위협,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다음, 이에 따라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등 노골적인 병탐을 꾀할 즈음,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40여 개국 대표가 참석하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4월에 고종은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에게 신임장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를 주어 만국회의에 나가 우리 실상을 만천하에 고하도록 했다. 이상설은 전 평리원검사(平理院檢事) 이준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를 거쳐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스부르크(레닌그라드)에 도착, 전 러시아 공사관 서기 이위종을 데리고 회담 개최 며칠 전에 헤이그에 도착했다.


    그러나 회의 자체가 열강이라는 <큰도둑들의 만찬회>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영국 등의 집요한 방해와 열국의 방관으로 인해 우리 대표들은 회의참석과 발언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언론인 W. 스테드의 주선으로 한국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호소할 기회를 얻어, 노어·불어·영어 등에 능통한 젊은 이위종이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조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 연설 전문은 <한국을 위해 호소한다>라는 제목으로 세계각국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으며, 이에 이준은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그곳에서 분사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7월 20일 양위식을 강행했다. 이에 흥분한 군중은 친일단체 일진회의 기관지를 내는 <국민신문사>와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친일괴수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항일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에 아랑곳없이 7월 24일에는 일제의 차관정치(次官政治)를 위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성립시킨 데 이어, 27일에는 언론탄압을 위한 <신문지법>을, 29일에는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을, 31일에는 한국 군대 해산명령을 각각 공포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도 광무(光武)에서 융희(隆熙)로 바뀌었으며, 전국 각지에서는 일제에 항쟁하는 정미의병(丁未義兵)이 일어나는 가운데 일제는 한국병탐의 마지막 작업을 서둘게 되었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일제가 이를 방해했으며, 사실상 일제는 최대한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게 하고 대한제국을 먹어야 했으므로 이 특사가 실패했던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 이후였고, 군사력도 사실상 없었으므로)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기 보다는 당시 고종은 말 그대로 황궁에 유폐당한 상태여서, 누구를 만나 무슨 말을 했는지 일본 통감부가 항상 모두 감시하고 있었기에 이준으로 결성된 특사 일행의 동정은 치밀했습니다. 3월 24일 고종 황제는 극비에 이준을 만났고 4월 20일자로 신임장을 보냈고 첩보 영화 수준의 작전을 통해 위임장을 받은 이준은 이상설과 이위종을 각각 다른 곳에서 만나 합류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감시를 피하고자 했고 거기다 고종의 친서를 소지한 헐버트가 일본으로 이동하며 기만 작전까지 펼쳤지만 이들은 결국 회의 장에서 개최국인 네덜란드 외무 장관의 면회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하면서 이 시점에서 밀사의 존재는 그들이 접촉한 열강 측에서 일본 측에 통보가 되었고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