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삼국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식을 치뤄주었나요?
고대시대에나 근대시대에나 현재나 사람은 늘 죽습니다. 그렇게 되면 장례를 꼭 치뤄주게 되는데요. 예전 삼국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식을 치뤄주었나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대사회부터 매장으로 망자의 시신을 처리하면서 장례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두만강 유역 토장과 춘천 교동 굴장 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망자의 시신처리는 매장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생기거나 사람이 죽으면 살던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짓는다”는 문헌 기록을 통해서 가족 중 누군가 죽으면 자신들이 거주하던 공간을 망자의 무덤으로 만들고 거처를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분묘를 지표면을 기준으로 해서 지상과 지하로 구분해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분묘를 지하로 처리한 사례는 토장묘와 돌덧널무덤, 석상묘, 덧널무덤, 독무덤 등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반대로 지상에 설치한 분묘로는 동굴묘와 돌무지무덤, 고인돌 등이 이 사례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으로 지상과 지하를 혼용한 묘는 돌덧널무덤과 고인돌, 덧널무덤, 봉분묘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사례로 제시한 분묘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됨으로써,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이미 망자의 시신을 매장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위지동이전」에 나타난 장례 풍속은 정상(停喪), 순장, 후장, 상복제, 복장제 등이다. 부여에서는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얼음을 넣어 장사 지내고, 장사 때 사람을 죽여서 매장하는 순장제(殉葬制)를 실시하였다. 장사를 후하게 지내는데, 곽은 사용하나 시신을 넣는 관은 사용하지 않았다.
-출처:우리역사넷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근 한성백제 시기 왕실 묘역인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에서 총 4.3㎏의 화장된 사람의 뼈(인골)가 발견됐다. 석촌동 고분군은 4세기 후반에 조성된 백제의 집단무덤으로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고분에서 화장 인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제 왕실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화장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라 주목된다.
불교의 장례 문화가 본격화된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사람이 죽었을 때 왕실에서 화장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지만, 삼국시대 기록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치영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사람이 죽으면 나무관 등에 넣어 돌로 만든 방 안에 매장하는 것이 삼국시대의 보편적인 장례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화장된 사람들은 왕과 혈연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게 정 학예연구사의 분석이다. 화장된 뼈가 나온 곳과 가까운 곳에서 금 귀걸이, 유리구슬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음을 드러내는 유물이 같이 나왔기 때문. 그는 “사람을 화장하는 문화가 비슷한 시기에 유입되기 시작한 불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