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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7.12

조선에서 백정은 왜 천한 취급을 받았던 건가요?

조선에서 백정은 천민들까지 무시했을 정도로 하찮은 취급을 받은걸로 알고 있는데요.

백정은 왜 사람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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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평민 하류에 속해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으며 조선 전기 중대한 사회문제로 취급받았습니다.

    조정에서는 어떻게든 이들을 일반 백성과 동화시키려 했지만 유랑생활과 수렵에 익숙하던 그들은 칼을 쓰는데 일가견이 있고 말도 잘 탔기 때문에 조선에서 걸핏하면 산적으로 위장해 농민들을 약탈하고, 관가까지 털었으며 조정이 추진한 양민들과 통혼과 동화는 양민들 뿐 아니라 백정들도 거부했습니다. 백정은 강도들을 잡으면 다 백정, 살인범의 절반은 백정, 가축 훔친 흔적을 조사면 백정 마을, 방화범을 잡으면 반은 백정 등 의 수준이었고 백정 마적단의 난리는 세종, 문종, 세조 내내 골칫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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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정은 고려시대 화척(禾尺)이라고 불리는 무리였다. 수척(水尺)·양수척·무자리라고 불렸던 이들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화척으로 불렸다가 조선 초에는 백정(白丁)이라고 바뀌어 불렸다. 이들은 고려시대부터 악명 높은 범죄집단으로 떼지어 유랑하며 걸식, 강도, 방화, 살인 등 각종 범죄를 자행하였다. 고려 말의 홍건적 침입 때에는 길잡이 노릇을 하였으며, 왜구를 가장해 민가를 약탈하기도 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나라에서 화척을 비롯해 제주 사람과 재인을 모두 찾아내어 서북면 수졸(戍卒)로 충당하기도 하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싸움도 잘하니 달래고 집과 관직을 주며 정착하게 했지만 천성이 유랑자들이라 쉽지않았다는 문헌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별도 거주지에서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관의 특별한 허락까지 필요한, 말 그대로 요주의 대상으로 천민보다 더 천한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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