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옛날엔 제주도를 탐라국이라고 불렀잖아요.
내륙과는 다른 별도의 국가 였던 걸로 아는데요.
탐라국은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탐라국은 기원전 2337년 고을나왕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제주도의 고대국가입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및 조선 조기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1404년 조선에 완전 병합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탐라국은 지금의 제주도에 있던 옛 나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 및 조선 초까지 오랫동안 불려졌습니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제주도 3성 시조신의 하나인 고을나의 15세손 고후, 고청과 그 아우 등 3형제가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에 이르렀는데 이때는 신라 성시였고, 3형제가 들어와 조공하자 신라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맏아들에게는 성주, 둘째에게는 왕자, 막내에게 도내라는 작호를 주고 국호를 탐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서 탐라국이라는 명칭이 유래, 실제로는 섬나라 라는 뜻 입니다.
성립연대는 신라 성시라는 시기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이므로 문무왕때로 추정, 그 이전의 사회는 3성씨족의 공동연맹체적인 체제로 보이며 신라의 삼국통일에 이르러 3성 가운데 세력이 강성한 고씨 씨족이 군장으로 군림해 국주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설화에 의하면 처음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등 3성의 시조가 모흥혈에서 나타나자 그 자손들이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고 하며 사람은 키가 조금 작고 언어는 한과같지 않고 비루하며 여름에는 초옥에 살고 겨울에는 굴실에 산다고 합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한조에는 주호 라고 지짗, 배를 타고 중국과 한에 내왕하며 교역했다고 합니다.
대외관계는 제일 먼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백제와 밀접해 476년 4월 사신을 파견해 방물을 바치고 그 사신은 좌평의 관등을 받았으며 198년 8월 공부를 바치지 않다가 백제동성왕이 친히 정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공부를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고구려와는 가옥을 수출하는 등 교역을 했으나 백제에 복속된 이후로는 교섭이 두절, 신라와는 662년 2월 탐라국주 좌평 도동음률이 와서 함복함으로써 이때부터 신라의 속국이 되었으며 위에 일본과 가깝게 지내다 678년 2월 신라 사신의 경략을 받고 뒤로는 신라와 활발하게 교섭했습니다.
한편 중국 당나라와는 661년 8월 왕 유리도라가 사신을 보내기도했으며 일본과는 661년 당나라에서 귀국하던 일본사신의 배가 풍랑을 만나 탐라국에 대피했다가 귀국할 때 왕자 이파기 등 9명이 이들을 따라 일본에 간 일이 있은 뒤로 매우 교섭이 활발해 많은 왕자와 좌평이 일본을 다녀왔으며 680년 9월과 686년 8월 일본에서 사신이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 말기 점차 복속관계에서 벗어나 신진세력인 고려에 우호관계를 맺고자 하여 925년 11월 사신을 파견해 방물을 바쳤고 938년 12월 탐라국주 고자견이 태자 말로를 파견해 입조하고 고려로부터 신라의 예에 따라 성주, 왕자의 작위를 받아 고려의 번국으로서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했고 1105년 고려의 지방행정구획인 1개의 군으로 개편되면서 반독립적인 체제는 사라졌습니다.
1153년 탐라군은 다시 격하되어 탐라현이 된 뒤로는 고려조정으로부터 파견된 현령이 탐라의 행정업무를 관장, 이에 탐라국 체제는 없어지고 성주와 왕자의 관직만이 남아 상징적 존재로 유지됩니다.
조선이 건국 후 1404년 5월 성주는 좌도지관, 왕자는 우도지관으로 개칭되어 존속하다가 1445년 6월 이마저 폐지되어 이 때부터 탐라의 귀족계급은 완전히 평민화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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