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의 외교담판은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의 협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거란은 고려가 송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불만스러워했고 이를 트집잡아 고려를 공격했습니다. 이에 서희는 거란이 고려를 공격한 진짜 이유가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끊는 데에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소손녕과의 협상에서 고려가 거란과 친교할 것을 약속하고, 여진족을 토벌하여 성을 쌓은 뒤에 요나라로 가는 길목을 열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 결과 거란은 압록강 동쪽 280리 지역인 강동 6주를 고려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고려는 전쟁 없이 영토를 확보함과 동시에 백성들의 삶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노련한 서희는 거란의 작전이 겁을 주어 송과 친한 고려가 쉽게 거란에 대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소손녕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서희는 성종과 다른 신하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거란과의 협상에 나서게 됩니다. 이른바 서희의 외교담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순녕은 신라의 후손인 고려는 강동 6주를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서희는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이어받은 고려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강동 6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히려 고려와 거란의 교역을 방해하는 족속은 여진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진을 물리치면 고려와 거란이 직접 통상거래를 하게 되니 양국에 이익이다라고 주장하여 거란으로 하여금 여진을 치게 합니다. 결국 거란은 고려와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강동 6주론 세치 혀로 가져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