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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비둘기23.07.16

신라문무왕은 왜 수장을 하게 된것인가요?

역사상 대부분의 왕들은 명당에 아주거대하게 그들의 묘가 세워지는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통일신라시대의 문무왕의 유골은 육지가 아닌 바다에 수장의 방식으로 바다에 뿌려지게되었는데 왜 문무왕의 유골만 통상적인 방식이 아닌 수장의 방식으로 뿌려지게된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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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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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왕은 삼국 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 재위 21년 사망했기 때문에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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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는 재위 21년(681)에 사망했다.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서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문무왕릉에 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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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을 만든 이유는 “내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火葬)하여 동해 바다에 장사 지내라.”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이 681년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언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서 신라왕 중 유일 하게 수장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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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1]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맞은 편 동해 바다에 위치한 작은 바위섬이며, 신라 문무왕의 왕릉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으며, 일명 대왕암(大王岩)과 대왕바위라고도 한다.


    기록과 대조해 감은사지나 이견대 등의 용도, 구조 및 위치로 보아 대왕암이 바로 승하한 문무왕을 장사지낸 문무왕릉임은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래에 있는 논란들은 문무왕의 화장한 유골을 뿌린 산골처인가, 아니면 유골함과 부장품이 지금도 안에 들어있는 수중릉인가에 대한 논란이었고, 전자라고 해도 이미 신라 당대부터 윤회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실상 왕릉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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