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모리오깨무르프423
모리오깨무르프42323.08.30

조선시대 호랑기 잡는 부대 착호갑사는 실제 있었나요?

조선시대에 군부대는 존재했었는데요. 그 군부대에 조선에 사는 호랑이들을 사냥하는 정식부대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역사적 자료는 찾아도 잘 안나오더라구요ㅠㅠ

실제로 이러한 부대가 존해하였는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착호갑사는 무예가 뛰어난 군인 중에서 선발된, 호랑이를 잡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특수 부대였습니다.

    착호갑사는 살상력이 뛰어난 목궁이나 쇠뇌를 이용하여 호랑이를 잡았으며,

    호랑이 사냥이 끝나면 공격한 순서와

    호랑이의 크기에 따라 포상을

    받았습니다. 착호갑사는 나라와 백성을 수호한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착호갑사"라고 불리는 특별한 부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착호갑사"는 대체로 현실적인 역사적 근거 없이 만들어진 가상의 개념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군대와 경찰, 경비 부대 등 다양한 조직과 군사 단위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좌우구둥'이나 '진위보수' 등이 있으며, 이들은 군사 훈련과 경비, 치안 유지 등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착호갑사"와 같은 이름으로 특별히 호랑이를 잡는 부대로서의 존재는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호랑이 사냥은 조선시대에 일상적인 활동이 아니었으며, 호랑이를 사냥하려면 상당한 위험과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호랑이 사냥은 주로 훈련된 전문 사냥꾼이나 병사들이 아닌 주변의 일반인들이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요약하면, "착호갑사"는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상의 개념으로 여겨집니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군사 조직과 경비 부대가 있었지만, "착호갑사"와 같은 호랑이 잡는 부대로서의 실재는 역사적 기록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착호갑사는 조선시대 호랑이를 잡기 위해 별도로 설치한 직종으로 호환이 생길때마다 착호군을 편성해 호랑이를 잡는 일이 여러가지로 효과가 없자 이를 위한 별도의 상시적인 군사 조직을 갖춘것입니다.

    경국대전 병사에 따르면 갑사 1800명 중 착호갑사가 440명으로 늘었고 5교대로 88명이 6개월씩 복무하며 체아록을 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범을 잡기 위하여 배치하던 갑사(甲士). 세종 3년(1421)에는 당번(當番)•하번(下番) 착호갑사를 각각 20인으로 제도화하였음. 그 후 갑사(甲士)의 정액(定額)이 증가됨에 따라 ≪경국대전≫ 병전(兵典) 번차도목조(番次都目條)에는 갑사 1만 4천 8백 원 가운데 착호갑사 4백 40인이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음.

    출처 : 한국고전용어사전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세종3년(1421)

    처음으로 착호갑사 당번20명, 하번20명 임명

    [경국대전 기록] 초기 갑사 1800명 중 착호갑사가 440명

    5교대로 88명이 6개월씩 복무하면서 체아록(실적평가 급여)을 받음

    착호갑사의 입속요건

    "목전(木箭:무예시험용으로 화살촉을 나무로 만든 화살)을 180보에서 1개 이상 맞추는 것, 기사(騎射:말타고 쏘는 것)는 2번 이상, 기창(騎槍:말타고 창던지기)은 1번 이상, 주(走:일정 시간 멀리 달리는 능력시험에서 250보 이상 가는 것)·힘(양손에 각각 50근씩 들고 100보 이상 가는 시험) 가운데 1가지에 합격한 자를 취했다. 한편 선전창(先箭槍)·차전창(次箭槍:첫번째와 2번째의 창과 화살로 맞추는 것)으로 호(虎=범) 2구를 잡는 자는 취재시험을 면제하고 배속을 허락한다" - [경국대전]

    선전창과 차전창의 규정은 호랑이를 실제로 잡아본 사람을 우대하기 위해 1425년에 새로 넣은 것이다.

    또한 지방의 착호인(捉虎人)은 절도사가 군사 및 향리와 역리(驛吏), 공천과 사천(私賤) 중에서 자원을 받아 뽑고 자원자가 없는 경우에는 장용(壯勇)한 자를 택하여 정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1784년(정조 8)에 편찬된 〈대전통편〉에는 자원규정이 폐지됨.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착호갑사는 실제 존재했던 부대입니다. 착호갑사는 조선시대에 호랑이 피해를 막기 위해 창설된 부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매우 많았으며,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에 조선 정부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착호갑사를 창설했습니다.


    착호갑사는 1416년(태종 16년)에 처음 창설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호랑이 피해가 매우 심각하여, 호랑이를 잡아 없애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태종은 착호갑사를 창설하여 호랑이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착호갑사는 1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호랑이 사냥에 특화된 훈련을 받았습니다. 착호갑사들은 호랑이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호랑이 사냥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착호갑사들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약 300년 동안 활동하며 호랑이 피해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착호갑사는 조선시대의 호랑이 사냥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제공해 줍니다. 착호갑사의 활동을 통해 조선시대의 호랑이 피해 실태와 호랑이 사냥에 대한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착호갑사는 조선시대의 국가적 역량이 호랑이 사냥에도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