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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매미13
반듯한매미1323.01.29

TV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는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티비를 보면서 하루를 즐기는데요 이런 TV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또 언제 만들었는지도 궁금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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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러 기록들이 있지만 그전에는 텔레비전이 생기기 위한것들의 발명이고

    정확히 지금의 텔레비젼 같은것은 1906년에

    영국의 스윈튼이 만든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TV를 만든 사람은 영국의 존 로지 베어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식 텔레비전으로 니프코브 원판을 1분에 6백번 회전시켜서 동화상을 복원하는데 성공하고, 나중에 화질을 더 개선시켜서 다음해 1월 영국 왕립과 왕립 과학 협회의 50명의 과학자들 앞에서 텔레비전 공개 실험에 성공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베어드 John Logie Baird 1888~1946

    영국의 발명가·전기 공학자

    스코틀랜드의헬렌스버그에서 태어났다. 목사의 아들로 공업 전문 학교를 거쳐 글래스고 대학을 졸업하였다. 몸이 약한 탓으로 전기 기술자직을그만두고, 1922년부터 텔레비전의 발명에 몰두, 1926년 최초로 공개 시험에 성공하였다.그가 창설한 베어드 텔레비전 개발 회사에의하여, 1929년에 처음으로 비비시(BBC) 방송이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다.베어드의 주사 방식은 기계식이었으나, 얼마뒤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1927년에는 적외선을 이용하여 어둠 속에서 영상을 송신할 수있는 녹토비저를 발명하였다

    1926년 처음으로 텔레비전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1920년대에는 레이더와 적외선 텔레비전도 연구하였으며, 1944년에는 입체 화면과 칼라 영상을 발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인류의 기록에 대한 끊임없는 발견과 발명의 역사는 때로는 석판으로 , 석판에서 나무껍질로, 나무껍질에서 활자화된 문자를 찍어낼수 있는 종이에 이르기까지 유사이래 계속되어져 왔다.

    이러한 활자화된 매체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면 후세에의 지식전달과 타인과의 의사소통이라는 부분을 꼽을 수 있었겠으나 , 인구의 증가와 생활영역의 확장은 활자화된 매체의 한계를 드러내게끔 했다.

    활자화된 매체를 이용한 기록과 전달의 발명, 발견이 구체화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1873년 Joseph May 와 Willoughby 가 최초로 광전효과(Photoconductive Effect)를 발견 한 이래 , 인류의 Broadcasing 에 대한 연구는 이전의 어떤 기술이나 문화보다 급속하게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1884년, 'Nipko's Disc'로 잘 알려진 Paul Nipkow는 Disc에 원의 중앙을 향해 나선형의 구멍을 내고 회전시켜 , 물체의 상을 연속적으로 잡아내는데 성공하였고, 1924년 과 1925년에 John Logie Baird 와 Charles Francis Jankins가 'Nipko's Disc'를 이용한 최초의 방송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계적인 방송시스템은 1935년경 Farnsworth와 Zworykin이 Iconoscope camera tube를 이용한 전자화된 방송시스템을 이용해 간간히 방송하기 시작할때까지 경제적인 면에서 우위를 보이며 사용되었다.

    1938년 개발된 오르시콘(Orthicon) tube를 이용해 RCA와 Zworykin이 1940년에 첫상업TV 를 방송하고, 미국의 NTSC에 의해 TV의 전송규약들이 제정되어 현재의 방송규약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초기 흑백 TV 시스템과 그 수상기의 가격이 하락해, 일반 대중에게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즈음에는, 소위 "TV의 황금기"라고 불리게 된 컬러TV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1953년 NTSC에 의해 방식에 제정된 최초의 컬러화된 방송이 송출되었고, 이를 수신할 수 있는 컬러TV의 등장은 인류역사상 가장 급격한 미디어의 혁명이라고 할 만큼 폭발적으로 보급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Nipko's Disc" 에서부터 50년대에 이르기까지 , 일반 소비자가 느낄 수 있었던 가장 명확한 혁명적인 변화는 흑백방송시스템에서 컬러방송시스템으로의 변화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1980년대 말까지의 기간동안에는초기의 컬러TV의 기본에서 월등히 향상된 기술적 진보 없이 방송사의 일방적인 프로그램 제작능력이나 연예인, 방송인 등이 연출해 내는 컨텐트만으로 미디어업계를 이끌어왔던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에 들어 또 한번의 급격한 변화가 모색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될 Digital Technology 기술로의 전이가 발빠르게 시작되었거나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에 와있다.

    현재 세계 각 방송국은 소비자들을 겨냥해 가능한 빠른시일내에 디지털 장비를 갖춰가고 있으며 방송컨텐트의 다양화를 위해 Content를 제공하는 사업자들 역시 만반의 태세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흐름의 중심엔 물론 디지털TV라는 새로운 Digital 기술이 있다.

    디지털TV는 고품위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위해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상대적으로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어려운 사용법의 컴퓨터를 이용해 쇼핑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컬러TV이후로 변변한 "히트" 기술이 없이도 대중매체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온 TV도, 시청자들의 의식 수준의 향상과 WWW(World Wide Web) , DVD 등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하나둘 자리를 내주어고 있는 상황에 직면한다.

    90년대 초반부터 밀어닥친 인터넷의 열풍은 소비자들을 , 시청자들을 TV보다 컴퓨터를 이용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기술서비스. 이제 아날로그 TV에게는 대안이 없다. 재도약을 하기 위한 시작점인 Digital TV. 왜 디지털기술의 TV이어야 하는지, 기존TV와의 극명한 차이는 어떤지 비교하여 보면 훨씬 명확해 것이다.


    기존 Analog TV의 한계

    -화질 : 90년대 이전까지의 시청자들은 , Analog TV의 화질의 좋고 나쁨보다는 TV수상기의 크고 작음을 판단의 척도로 해온 추세. 하지만 Computer와 CD , DVD등에서 보여지는 고화질, 고음질의 영상은 기존TV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NTSC방식이나 PAL로 대표되는 AnalogTV 특성상의 한계로 화질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Analog TV수상기의 품질이 화질을 다소나마 보완하는 것이 전부.


    -음질 : 전통적인 TV에서의 가장 분명한 한계적인 요소는 음향효과. 단지 두개의 스피커를 지원하는 FM스테레오 방식은 CD음질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점차 외면할수 밖에 없다.


    -화면비율(Aspect Ratio) :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필름의 화면비율은 대부분 16:9 , 따라서 영화를 TV에서 보여줄때에는 텔레씨네라는 과정을 거쳐 적절히 조절된 화면을 봐야 할 뿐 아니라, 화면 양쪽끝 부분이 짤려보이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노이즈 및 기타요소 : 기존 TV를 그나마 깨끗하게 시청하려면 감도가 좋은 안테나가 필수적 일뿐만아니라 Analog방식의 시그널은 전송시의 복원율이 디지털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현재에도 흔히 "Ghost현상" 과 같은 대표적인 노이즈에 취약한 부분이 있어왔다


    TV는 지금도 일부에선 소위 '바보상자' 라는 개념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는 단지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프로그램을 일방적 으로 보기만 해야 하는 한계에 의한것.

    시청자는 보기만 할 뿐,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보려면 Video라는 별도의 장치를 이용해야 하거나, 대중화되어 있는 VideoTape시장만큼의 다양한 프로그램 들을 원하는대로 취사선택한다는것은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Digital 이어야 한다.

    언제까지 '바보상자'만을 봐야 하는지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방송국이나 관할 기관에서 무한히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시간씩 답답한 상자만을 보는 것은 정보화시대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일. 어느새 눈앞에 훌쩍 다가온 디지털세상, 디지털 흐름에 동조해야 할 일들도 , 누려야할 권리도 산처럼 쌓여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다양한 시청자들의 요구

    보다 선명하고 완성도 높은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지원

    여타 첨단매체들 이상의 수준높은 부가서비스 지원

    원활한 쌍방향 통신을 지원

    진정한의미의 통합 A/V 장비로써의 역할 등


    차세대 멀티미디어 문화를 선도할 기술의 집합체인 디지털TV라는 '상자' 라는 새로운 혁명에 눈을 돌려야 할 시간이다.


    이미 시장에는 분리형Digital-Ready TV를 위시해 각종 디지털장비가 판매되고 있다.

    불과 몇 년후면, 이제는 더 이상 ‘다이얼’을 돌려 전화하는 기계식 전화기를 쓰는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AnalogTV를 보려고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제 여기서,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Dot 픽셀이 뻔히 보이며 , 빈약한 사운드에, 비오거나 천둥이 치면 노이즈 간섭이심한 커다란 덩치의 TV를 보기위해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선명한 화면과 영화관과 같은 음향효과를 갖춘 새로 출시된 원하는 영화를보면서 인터넷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슬림형 A/V Digital TV, 혹은 디지털TV를 수신하기위한 최적의 장비를 구입할 것인가?


    텔레비젼의 역사


    동영상의 전송은 1884년 독일 기술자 Paul Nipkow가 최초로 원판(Nipkow's Disk)를 이용하여 주사의 개념을 구현시켜 이를 통해 시도하였다. 즉, 지름 1.5 - 2 (m) 정도의 원판 상에 나선(spiral)모양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전동기를 회전시켜서 이 구멍을 통과한 빛을 세레늄 광전지로 센싱해 이를 수신단에서는 동일하게 원판을 회전시켜 가로 주사선 10여줄로 화상의 재생을 시도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러한 원판식 주사대신에 렌즈와 거울을 이용하여 주사하는 기술도 개발되었으며, 이러한 기계식 주사를 이용한 텔레비젼은 1930년대 말까지 실제 방송까지 되면서 계속적으로 발전하였다.

    1897년에는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의 K.F. Braun이 음극선관을 발명함에 따라 화상재생장치 부분에서도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1905년에는 光電變換을 위한 센서로 Hans Kindel이 광전지를 개발하였다. 그림은 1907년에 개발된 TV 시스템으로, 기계식 주사 및 광전관을 통한 촬상장치와 음극선관 재생장치를 이용한 텔레비젼을 나타낸다. 수평방향과 수직방향을 주사제어하는 거울들에의해 기계적으로 주사된 영상을 광전관으로 센싱하여 이를 음극선관을 통해 재생하는 방식은 현재의 텔레비젼의 개념과 거의 유사하다.


    전자식 TV에 관한 이론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Alan Archibald Cambell-Swinton이 1908년 6월 18일 Nature지에 기고한 글에서이다. 이 글은 "수상기에 있어서 음극선의 강약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송신기의 고안"이었다. 이 이론을 토대로 실용화에 접근시킨 것은 러시아의 Petersburg 대학의 Boris Rosing이었다. 그의 연구는 러시아혁명으로 중단되었으나 그의 제자의 한 사람인 Vladimir Zworykin은 혁명후 1919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에는 Westinghouse社에서, 나중에는 RCA에서 근무하면서 TV 개발에 큰 역할을 하였다. RCA는 유명한 Thomas Edison과 Elihu Thomson이 설립한 회사로 TV 개발 및 실용화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회사이다. Zworykin이 1923년 Iconoscope 촬상관을 발명하고 1929년 Westinghouse에서 Kinescope 수상관을 사용한 TV수상기를 일반에게 선보이자 RCA의 판매담당 이사이던 David L. Sarnoff는 이에 주목하여 Zworykin을 RCA사로 초빙하여 전자주사방식 TV의 개발에 착수했다. 1930년에 Zworykin은 Camden 의 RCA 전자공학연구소의 소장이 되고 1939년에 뉴욕에서의 세계 박람회에서 최초의 텔레비젼이 선보였다.


    1940년에 영국의 CBS는 최초로 컬러 TV 시험방송을 개시했다. 1946년에 상용 방송국이 방송을 개시하여 미국내에 2000-3000대의 TV가 보급되었다. 컬러 TV는 초기에 필드 순차법과 線順次法이 있었으나, RCA가 點順次方式의 개발에 주력하여 흑백TV와 호환성이 있는 컬러TV를 완성시켜 1950년대초 FCC의 검토를 거쳐 1953년 NTSC표준으로 채택되었다.


    RCA에서는 1950년 Vidicon 촬상관을, 1951년에는 3본의 전자총을 사용하고 이들을 샤도우 마스크를 통해 적,녹,청의 형광체를 여기시키는 CRT 를 개발하였으며, 이는 컬러 TV의 표준이 되었다. RCA는 기술개발 뿐만 아니라 초기부터 특허관리에 막대한 관심을 쏟아 1930년대에 이미 이미 연구개발비에 육박하는 특허관련 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1954년 RCA는 21인치 컬러TV의 생산, 판매를 개시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각국에서는 TV 수상기의 Transistor화 추진에 착수하여 1959년 Philco는 세계 최초로 완전한 Transistor 회로를 사용한 전지식 Portable 흑백TV를 250불에 판매개시하였다. 1964년 일본의 야오전기는 Transistor식 컬러TV를 발표하였다. 1966년 RCA는 처음으로 증폭, 진폭제한, 평형FM검파 및 4.5MHz 음성채널 전치증폭회로를 IC화하여 TV에 사용하였고, 1969년에는 초음파방식의 리모콘을 컬러TV에 사용하였다.


    (3) 우리나라의 텔레비젼 방송 역사

    우리나라의 TV방송은 1956년 대한 방송주식회사가 처음으로 상업방송으로서 미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흑백TV의 방송을 시작하였다. 5.16혁명후 정부차원에서 흑백 TV방송을 추진하여 서울 테레비젼 방송국이라 하여 정규방송을 개시하였다. 1964년 민방인 동양방송이 상용방송을 개시하였고, 1969년에는 MBC가 개국하였다. 1973년 KBS가 주식회사로 창립되어 1976년 첫방송을 개시하였다. 컬러텔레비젼 방송은 KBS에서 1980년에 시작하였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텔레비전을 최초로 상업화한 사람은 영국의 기술자인 존 베어드(John L. Baird, 1888~1946)였다고 합니다. 그는 1925년에 니프코브 원판과 브라운관을 활용하여 “텔레바이저”로 불린 기계식 텔레비전을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텔레 비젼의 시초 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