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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키위191
넉넉한키위19123.10.31

조선시대 상비군은 어느시대부터 생기게 되었고 어떠한 체제를 갖추었나요?

조선시대 상비군이 있었다고 들었습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비군은 어느시대부터 생기게되었으며 당시 상비군의 급여수준과 체제를 어떻게 갖추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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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상비군 제도는 선조 26년인 1593년에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훈련도감은 왜란을 맞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임시조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필요에 따라 상설조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훈련도감의 병종은 조총수인 포수, 창검을 쓰는 살수, 활을 쏘는 사수의 삼수병 체제로 구성되었습니다. 나중에 여진의 위협이 커지면서 마군이 추가되었습니다.


    훈련도감이 확대되면서 조직도 변화했습니다.

    - 도제조 1명(의정 관직이 겸직)

    - 제조 2명(병조ᆞ호조판서 겸직)

    : 도제조는 훈련대장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대신 지휘를 맡으며, 제조와 함께 훈련도감 운영의 전반을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

    - 종2품 대장 1명,

    - 종3품 중군 1명

    - 정3품 별장 1명

    - 종4품 천총 2명

    - 정3품 국별장 3명

    - 종4품 파총 6명

    - 종6품 종사관 4명

    - 종9품 초관 34명이

    훈련도감의 지휘부를 구성했습니다. 그 외에도 600여 명의 편제 인원들이 있었습니다.


    훈련대장은 실질적인 지휘권과 도감 장관(將官)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정치적 비중이 상당한 직책이었습니다.


    병력 편제는 33초를 6사로 묶고, 다시 좌ᆞ우 양부로 조직하여 운영하였습니다. 즉 마병(=사수) 7초(1초 119명) 833명, 포수 20초(1초 122명) 2,440명, 살수 6초(1초 123명) 738명 모두 합하여 33초에 4,011명으로 병력이 구성되었습니다. 훈련도감의 병력은 폐지 때까지 대략 5천 여명을 안팎으로 유지되었습니다.


    한편, 도감 소속 군인들은 의무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급료를 받고 복무하는 상비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급여가 지급되었습니다.


    말이 있는 군인의 경우 쌀 10말, 콩 9말을 지급받았으며 말이 없는 경우에는 쌀 9말을 지급받았습니다. 훈련도감에 처음 들어오면 쌀 4말을 받았고, 재주를 시험하여 최대 9말까지 받았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