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당시 어쩔수 없던걸까요?
광해군의 경우 비운의 조선왕으로 알고있는데요 사실 당시에 원래 강대국인 명나라와 신흥강국 금나라(나중 청나라)에 사이에 어쩔수없이 중립외교를 펼친거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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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네 맞습니다. 광해군이 명과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정책을 펼쳤으며
전쟁 이후 후금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관리했다는 것이 중립외교론의 주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를 재검토해보면, 광해군이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대응한 것에 가깝다는 점이 보입니다.
광해군은 처음부터 명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1만 이상의 조선군을 사르후 전투에 파병했지만, 명·조선 연합군이 대패하면서 조선군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강홍립이 광해군의 밀명에 따라 후금에 항복했다고 전해지지만, 당시 전황을 보면 이는 전투에서 대패한 뒤 잔여 병력이 적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결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광해군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외교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패배 이후 후금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피해 통제 전략이 중립외교로 해석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