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녹차가 재배된 시기는 언제부터인가요?
녹차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된건가요? 보성이 녹차로 유명한데, 녹차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고있는데요. 우리나라로는 어떻게 들어온건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녹차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산지는 중국 쓰촨성과 티베트 경계의 산악지대 일대이며, 한국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수입해 상류층에서 소비하다가 828년 신라 흥덕왕 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씨앗을 선물받아서 지리산 일대에 차나무를 심은 것이 확인된다.[5][6] 그래서 보성군이나 광주광역시, 전주시, 하동군을 둘러싼 지리산 일대에는 야생으로 자라는 차나무가 많다.
특히 하동군에는 쌍계사 등의 절에서 관리해온 오랜 차나무들이 많다. 차밭은 소규모로 지역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물론 차나무의 종류도 달라서 하동 쪽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야생인 경우 90%가 재래종이며 대충 중국산 대엽종의 변형으로 분류된다. 이쪽은 밭의 형태로 일궈지는 것보다 야산에 그냥 흩어져 있거나 군락을 이룬 곳을 밭으로 개간한 쪽이다. 또 보성군에 대규모 녹차밭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 때로, 일본인들이 조성한 차밭을 광복 후 보성 사람이 다시 일구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출처: 나무위키 녹차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산지는 중국 쓰촨성과 티베트 경계의 산악지대 일대이며, 한국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수입해 상류층에서 소비하다가 828년 신라 흥덕왕 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씨앗을 선물받아서 지리산 일대에 차나무를 심은 것이 확인된다. 그래서 보성군이나 광주광역시, 전주시, 하동군을 둘러싼 지리산 일대에는 야생으로 자라는 차나무가 많다.
특히 하동군에는 쌍계사 등의 절에서 관리해온 오랜 차나무들이 많다. 차밭은 소규모로 지역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물론 차나무의 종류도 달라서 하동 쪽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야생인 경우 90%가 재래종이며 대충 중국산 대엽종의 변형으로 분류된다. 이쪽은 밭의 형태로 일궈지는 것보다 야산에 그냥 흩어져 있거나 군락을 이룬 곳을 밭으로 개간한 쪽이다. 또 보성군에 대규모 녹차밭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 때로, 일본인들이 조성한 차밭을 광복 후 보성 사람이 다시 일구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수입해 상류층에서 소비하다가 828년 신라 흥덕왕 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씨앗을 선물받아 지리산 일대에 차나무를 심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차는 다른 문화분야가 그렇듯 출발은 다소 늦지만 나름의 특징을 가진 문화로 발달했다. '중국차는 향, 일본 차는 빛깔, 한국 차는 맛'이라는 말에서 보듯, 한국 차는 우수성에 관한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차의 체(體)라고 할 수 있는 지표수의 질이 뛰어 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좋은 물맛 때문에 한·중·일 동양삼국 중 한국의 차문화가 역사 중간에 한참 뒤처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냥 마실 수 있는 생수, 구수한 숭늉과 담배, 술 같은 기호품이 발달한 것도 원인이 됐다. 무엇보다 고려 때까지 그처럼 융성했던 차문화가 조선시대 들어 급격히 퇴조한 것은 조선조의 불교탄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찰문화와 더불어 발달한 차가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사회에서 퇴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식물군으로서의 차나무가 아닌 정신문화적 형태로서의 차가 한반도에 등장한 것은 실제 언제쯤일까.
한국 차와 관련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3년조에 적힌 내용이다. "흥덕왕 3년(828) 12월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대렴(大廉)이 차종자를 가지고 왔으므로 왕은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선덕왕(재위 632~647) 때부터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 성하였다"는 부분이다. 대렴이 중국에서 차종자를 가져오기 200년 가량 앞서 이미 한반도에 불공에 쓰이고 왕실의 예·패물로 다뤄질 정도의 차문화가 형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후상 한반도에서 차나무 입지조건이 가장 좋은 지리산일대에 차종자를 심도록 한 것은 이미 차재배의 경험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혹자는 대렴의 종자수입은 차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종자개량사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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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수입해 상류층에서 소비하다가 828년 신라 흥덕왕 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씨앗을 선물받아서 지리산 일대에 차나무를 심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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