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의무교육같은게 있었나요?
고려시대에도 지금의 초등학교나 조선시대의 서당처럼 어린아이들 대상으로 예절이나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국가기관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교육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당은 사립학교와 같다고 하니 의무교육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인 윤리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국가에서는 효자·충신·열녀를 표창하고, '삼강행실도' 등을 그림과 함께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남자는 서당에서는 아동 교육서인 『천자문』과 『동몽선습』등을 배우고,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향교나 서원에서 유교 경전이나 역사책을 공부하였습니다. 여자는 집안에서의 한글 교육을 통해 문자 생활이 가능해져, 편지 왕래나 한글 번역서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지식을 넓혀 갔다고 합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려의 교육제도는 크게 관학과 사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관학으로는 중앙에 국자감과 학당이 있고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으며, 사학으로는 십이도(十二徒)와 서당이 있었다. 그 중 십이도는 사학이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아 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편 국가에서는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비서원(秘書院) · 수서원(修書院)과 같은 일종의 도서관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고려의 국립 최고 학부인 국자감은 992년 개경에 설립되었으며, 일종의 종합대학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국학이라 개칭하고, 1109년에 새로운 성격의 문무 칠재(七齋)를 두어 전공별로 연구하게 하였다. 칠재는 여택재(麗澤齋) · 대빙재(待聘齋) · 경덕재(經德齋) · 구인재(求仁齋) · 복응재(服膺齋) · 양정재(養正齋) · 강예재(講藝齋) 등이며, 전공 과목은 각각 그 순서대로 주역 · 상서 · 모시 · 주례 · 대례(戴禮) · 춘추 · 무학(武學)을 과하였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 태학 · 사문학 · 율학 · 서학 · 산학의 6학이 있는데 각각의 입학자격은 계급과 신분에 따라 규정하였다. 교육내용은 『주역』 · 『상서』 · 『주례』 · 『예기』 · 『모시』 · 『춘추』 · 『좌씨전(左氏傳)』 · 『공양전(公羊傳)』 · 『곡량전(穀梁傳)』을 각각 1경(一經)으로 하고, 『효경』과 『논어』는 제생의 필수 과목으로 한 것으로 보아, 국자감의 교육목적은 귀족자제를 대상으로 한 관리양성인 동시에 유교적 학문의 연구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학습 및 고사 방법은 먼저 『효경』과 『논어』를 읽고 제경(諸經)을 다음으로 읽어야 하며, 산술과 시무책(時務策)을 익혀가는 외에 습자를 과하였다. 1경을 완전히 익힌 뒤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연말에 성적을 평가하여 박사나 조교가 이를 고시하도록 하였다. 교수로 국자학 · 태학 · 사문학에 박사와 조교를 두었고 율 · 서 · 산학에 박사를 두었으며, 학생 정원은 국자학 · 태학 · 사문학에 각 3백인이었고 율 · 서 · 산학은 확실하지 않다.
고려의 향교(鄕校)는 지방에 설립된 중등 정도의 관학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고려의 향학(鄕學)은 기록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설립 연대가 확실하지 않아 상세히 고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1127년(인종 5) 3월에 각 주와 현에다 학교를 세워 널리 교도(敎導)에 힘쓰라는 조서를 내린 것이 향학의 시초라 보고 있다. 직접 왕명을 받들어 각 지방에 학교가 생겼다는 기록은 인종 때 나타난 것이 처음이다.
향교는 공자와 선성(先聖) · 선현(先賢)을 제례하는 문묘와 교육을 실시하는 명륜당(明倫堂)이 있어, 선현배향과 교육기관의 역할을 같이 수행하였다. 그 정도는 국자감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축소, 간략화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방민의 교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향교의 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자는 선발되어 국자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고려 때의 향교 교육은 지방 문화발전에 도움을 주었으나 의종 이후 극도로 쇠퇴하여,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였다.
지방의 향교와 같은 정도의 교육기관으로 중앙에는 학당이 있었다. 동서학당(東西學堂)은 1261년(원종 2)에 개경의 동쪽과 서쪽에 설립되었으며, 오부학당(五部學堂)은 공양왕 때 개경의 동서남북과 중앙에 설립되었다. 학당은 교육 정도에 있어 향교와 유사하였으나, 향교가 교육기관인 동시에 문묘 제례의 기능을 가진 데 비해 학당은 문묘가 없이 교육만 담당한 기관이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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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국자감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국립교육기관으로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개경에 설치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교육제도로는 개경에 국자감, 지방에 향교가 있었습니다.
국자감은 국립대학이고, 향교는 지방대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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