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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한크낙새25
고매한크낙새2523.07.05

아내를 말하는 마누라는 어떻게 생긴말인가요?

생활속에서 좀 가볍게 아내를 부르는 말인데요. 마누라라는 말이 전혀 어디서 생겨난 말인지 추측이 안돼사지고요. 어떻게 생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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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루하(마루下)라는 말이 마누라로 변한 것입니다. 동아시아 국가의 전통적인 경칭들은 폐하(섬돌 폐+아래 하), 전하(대궐 전+아래 하), 저하(집 저+아래 하) 등 건축물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말루하 역시 '마루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의미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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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누라는 원래 임금이나 왕후를 일컫는 극존칭으로 사용되었다고합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었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아내의 호칭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가 쇠퇴하고 막을 내리기 시작할 무렵 늙은부인 또는 아내를 가리키는 낮춤말로 변해버렸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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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재난고의 저자이자 조선 후기 학자 황윤석은 마노라를 쓴 뒤 '이는 옛말의 마립간이다'라는 주석을 덧붙이고 사도세자를 이르면서 '사도마립간'이라 쓴 뒤 주석으로 마립간이 마노라를 뜻하는 표현임을 덧붙였습니다. 조선시대 학자 황윤석은 마노라 를 옛말의 마림간과 같은 뜻으로 보았습니다.

    또 사대부들은 한국어와 합성된 한자어 표기 말루하를 어원으로 보았고,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경칭들은 폐하, 전하, 저하 등 건축물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의미로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마노라 역시 마루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의미의 존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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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마누라는 상궁이나 후궁과 왕비를 부르던 삼인칭 극존칭입니다. 마마와 동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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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몇몇 단어의 경우에는 갖가지 이야기가 더 첨가되어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마누라’의 경우도 그러한 단어 중의 하나이다. ‘마누라’에는 ‘마주 보고 눕는 여자’라는 유래설 외에 ‘남편과 같이 못 있고 마루 밑에나 있는 여자’, ‘마주한 누나’, ‘마, (이제) 누우라’에서 온 말 등과 같은 유래설도 떠돈다.


    ‘마, (이제) 누우라’ 설에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 설명까지 곁들여 있어 우습기 짝이 없다. 부산이 고향인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신부가 첫날밤이 너무 무섭고 부끄러워 눕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신랑이 “마, (이제) 누우라”라고 했다. 그후 ‘마, (이제) 누우라’를 줄여서 ‘아내’를 뜻하는 말로 썼다는 것이다. ‘마누라’의 어원 설명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렇듯 황당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을까마는 너무 지나치다.


    정말, ‘마누라’의 어원 설명은 어렵다. 지금까지 ‘마imagefont〔宗〕’에 호격의 ‘-아’가 붙은 것이라든지, ‘만(첫째, 우두머리)’과 ‘오라〔門〕’가 결합된 것이라든지, 오로크어 ‘mama(부인)’에서 온 것이라든지 하는 등의 어원설이 있었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마누라’에 대해서 우리가 그나마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본래는 다른 의미를 지니다가 ‘처(妻)’의 의미를 띠게 되었고, 또 그 의미 변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점이다.


    ‘마누라’는 15세기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마노라’로 처음 나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서의 ‘마노라’는 ‘주인〔公〕’의 의미이다. 『이두편람(吏讀便覽)』에서도 ‘마노라’에 대해 ‘노비가 그 주인을 이르는 말’이라고 기술하여 ‘주인’의 의미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비천한 사람이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는 의미도 첨가하고 있다.


    그런데 『한중록(閑中錄)』에서는 ‘마노라’가 ‘왕, 왕대비, 세자, 세자빈’ 등과 같은 궁중의 높은 인물을 직접 지시하는 데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비마노라, 선왕마노라, 웃전마노라’ 등으로 활용되어 이들 궁중 인물과 결부된 존칭 호칭어로도 쓰이고 있다. 이로 보면 근대국어의 ‘마노라’는 한때 궁중이라는 특수 사회에서 쓰이던 궁중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때에는 ‘존칭(尊稱)’으로서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주목된다.


    궁궐 밖에서는 ‘마노라’가 ‘지체 높은 벼슬아치’나 ‘그 부인’ 등을 부르거나 지시하는 데도 쓰였다. ‘운현(雲峴)마노라, 선혜당상(宣惠堂上)마노라’의 ‘마노라’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무속(巫俗)이라는 특정 사회에서는 ‘마노라’가 ‘神’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산신(山神)마노라, 성주마노라, 터주마노라’에 보이는 ‘마노라’가 바로 그 예이다. ‘산신, 성주, 터주’를 여성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이들에 쓰인 ‘마노라’는 ‘남성’에 적용된 예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존칭으로 쓰인 예이다. 이렇게 보면 ‘마노라’는 존칭으로서 남녀 모두에게 통용되던 단어였음이 분명하다. 이는 ‘마마’ 또는 ‘마님’과 같은 의미 기능이다.


    ‘마노라’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로 추정된다. 어형이 ‘마누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지금과 같은 ‘중년 이상 된 아내’나 ‘보통의 늙은 부인’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들 변화된 의미에서는 존대(尊對)의 의미 자질은 물론이고 ‘남성’이라는 자질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아주 현저한 의미 변화이다.


    이러한 의미 변화가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조 말 ‘덕수궁’ 시절에는 궁중에서 ‘마누라’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노(老) 상궁(尙宮)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때, 적어도 19세기 말 이전에 ‘마누라’의 의미 가치가 떨어져 세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세속화된 단어를 궁중의 귀인(貴人)이나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쓸 수는 없었을 터이므로, ‘마누라’는 자연히 궁중어나 위상어(位相語)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본래 ‘마노라’가 존칭으로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 적용되다가, 존대 자질을 잃고 ‘여성’만으로 쓰임의 범위가 축소된 단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진 셈이다.

    출처 :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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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처럼 마마와 같이 쓰이던 극존칭어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평범한 남편들이 아내를 부르는 표현의 하나가 되어 버렸는데, 이는 관직명칭인 영감, 양반 등이 속된 표현으로 되어버린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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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강행실도에는 '주인'의 의미로

    등장하였으나, 1600년 계축일기에

    ‘마노라’의 형태로 변하여 종에 대한

    상전을 의미하거나 중년 여인을 칭하는 말로서 쓰였으며,

    국립국어원 ‘모전분전말루하(毛廛粉廛抹樓下)’라 하여 여주인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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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누라는 조선 시대에 왕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던 말이었는데 대중화 되었습니다.


    마누라는 조선 후기부터는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에서 유래한 말로, '마노라'는 '마마'와 '노라'의 합성어입니다. '마마'는 왕비를 가리키는 말로, '노라'는 여자를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마누라는 '왕비'와 '여자'가 합쳐진 말로, 왕비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가 개방되면서 왕비와 아내의 위상이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누라는 아내를 부르는 말로 사용되면서 점차 예의가 없어진 말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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