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선(羅禪)은 러시아(Russia)를 지칭한다. 1651년(효종 2) 러시아인들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흑룡강(黑龍江) 일대에 진출하여 성을 쌓고 곡물과 광물자원 등을 획득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전개하면서 청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그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 우수리강 하구를 지나 송화강(松花江) 방면으로 내려왔고, 이에 대항하여 청나라는 군사를 동원하여 격퇴하려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 군이 총포로 무장한 러시아인들에게 계속 연패하였고, 1653년 러시아는 이 지역의 경략을 국가 목표로 삼았다.
청은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격퇴하려 하였으나 무기 수준에서 낙후되어 불가능함을 알고, 임진왜란 이후 조총을 사용하는 조선에 총수병을 요청하였다(1654, 효종 5). 조선에서는 함경도 병마우후 변급(邊岌)에게 조총군 100명과 초관(哨官) 50여 명을 주어 지원군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모란강(무단장 牧丹江) 상류지역의 영고탑(寧古塔/寧安)에 이르러 명안달리(明安達哩)가 이끄는 청군 3천여 명과 합세하여 북상하다가 혼동강(混同江, 송화강 중류 지점)상에서 러시아군을 만나 교전하였다(4월 28일). 결과 7일만에 적군을 패퇴시키고 조선군은 6월에 본국 개선하였다. 청은 조선 총수의 위력을 처음 경험하였다. 이것이 제1차 나선정벌이다.
그 후에도 청나라는 단독으로 러시아군 거점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다시 조선에 총수(銃手)의 파견을 요청하였다(1658, 효종 9). 조선은 혜산 첨사 신유(申瀏)에게 총군 200명과 초관 60여명을 주어 다시 파견하였다. 신유는 영고탑에서 사이호달(沙爾瑚達)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와 합류하여 북상하였고,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스테파노프'의 러시아 군사와 접전을 벌였다(6월 10일). 10여 척의 배를 앞세우고 공격해 오는 러시아군에 총과 화전(火箭)으로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스테파노프를 포함하여 270여 명이 전사하였고 잔당 모두 패퇴 전멸하였다. 이것이 제2차 나선정벌이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