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동전과 지폐를 주로 쓰지만 옛날엔 물물교환을 주로 했습니다. 고려시대때는 주로 종이돈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새로 나온 것이 상평통보입니다. 그 이유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던 조선이 일본에서 들여온 은과 동이 많아졌고, 화폐를 많이 만들어도 부담이 없어진 겁니다. 실제로 조선에서는 위조화폐가 많았는데, 유통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위조화폐도 많아진 겁니다. 불법 주조 현장을 습격해도 정보가 새어나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불법 주조자들이 정부 관계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비변사등록>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화폐를 위조하다가 적발된 자는 엄히 처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득이 크기 때문에 엄하게 금지하더라도 위조를 막기 어렵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당시 위폐 제조자를 '도주자(盜鑄者)’라고 하였습니다.
화폐 위조는 조선 초부터 문제가 되었고 동전 사용이 보편화된 17세기 말에 이르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됩니다. 숙종은 화폐 위조를 막기 위해 제작자는 물론이고 공범까지 무겁게 처벌했는데, 강력한 단속으로 위조화폐 제작업자들은 서울을 떠나 산속이나 도서지역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심지어 바다에 배를 띄워 놓고 그 안에서 위폐를 제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폐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는 상평통보 뒷면에 발행 관청을 새겨 넣고 천자문 순으로 일련번호를 넣는 등을 새겨 넣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단속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