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황산벌 전투가 일어난 까닭이라면 당연히 전쟁 때문이라 말해야 겠지만, 원하시는 답은 이게 아니겠지요. 황산벌은 사비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다른 굳이 비유를 하자면 스파르타의 300명의 전사로 유명한 테르모필레와 비슷한 지형이 몇 있었지만, 길이 돌아가는 길이 조금씩 존재 했기에, 조금 불리하지만 황산벌을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황산벌에서 전투가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황산벌 전투가 큰 전투가 아니라 금방 끝나지 않은 이유는 5000결사대의 투혼이 아니라 당시 전투 상황때문이었습니다.
5만군사는 거의 식량을 운반하는 배달부들이었고, 소수의 호위부대만 존재했습니다. 물론 5000병사는 압도 했지만, 언덕에 자리잡고, 방진을 치고 기다리는 백제군을 치는 것은 쉽지 않았죠. 게다가 백제군의 사기는 대단했고, 그들의 질의 부분에선 신라보다 더 상황이 좋았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백제가 시간을 더 끄는 것은 물론 잘만 하면 이길 수도 있었습니다.
계백장군도 사실 김유신 장군과 그 전 까지의 성적을 비교하자면 김유신 장군이 계백장군을 따라올 수 없었죠. 그러한데 왜 김유신 장군의 마지막 작전인, 화랑 죽이기를 먹히도록 도와 주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그 일이 어쩌다 보니 잘 먹혀, 신라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이런 사실들을 묵과하고 단지 숫자로만 보았을때 5천대 5만의 머릿수의 차이와 백제의 마지막 사투와 연결이 되어 현제, 황산벌 전투라는 이름으로 남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