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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빙
비비빙23.03.04

조선시대에도 외국과 무역을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외국과 무역을 하였는지 어떤나라와 어떤물품을 교환하였는지 무역을 했다면 언제부터 하게되었는지 아시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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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5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무역을 담당하고, 인삼 재배 및 홍삼제조업 등을 한 한국의 대표적 상인집단이‘개성상인’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개성상인은 조선을 중심으로 청나라, 일본을 이어지는 삼각무역의 핵심 상인으로 활동하면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19세기 이후 인삼 재배에 자본을 투자하였으며, 재배한 인삼으로 홍삼(紅蔘)을 생산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무역을 담당하고, 인삼 재배 및 홍삼제조업 등을 한 한국의 대표적 상인집단이 ‘개성상인’이다. 개성상인은 조선 전기에 형성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국제무역을 통해 크게 발전하였다. 개성상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들 나름의 상업 활동에 적합한 상업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근대이행기에도 쇠퇴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기반이기도 하였다.

    출처: 지역N문화 조선시대 국제무역을 담당한 개성상인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대외무역은 명나라와

    청나라 등 중국과의 무역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대명무역은 사절을 통한 공무역과 사절 일행의 사무역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사무역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선은 거란, 여진, 왜, 중국 등과 무역을 하였습니다. 이슬람쪽과는 거래를 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명 이전의 원은 세계 제국으로서 동 서간의 교역을 중시했지만 명은 민간의 해상활동을 금지하는 해금령을 내려 해상무역을 위축시키고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을 중시하는 농본주의 정책을 추진 하여 이슬람과의 무역은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거의 모든 대외무역은 중국과 이루어 졌는데요,

    조선은 상업은 사치를 부리게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다하여 사농공상의 차별을 두었을 정도로 무역에 대해 엄격했고 그러다보니 무역은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상인이나 국가의 통역관과 같은 이들만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런이유로 무역을 대체로 통제한터라, 무역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고 상품들도 종이, 벼루, 먹과 같은 사대부들이 사용하는 물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선이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전의 것으로 18세기 말부터 무역이 점차 활성화 되기 시작하여 사농공상의 차별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무역이 활성화 되었어도 거의 국내무역이었고 대외무역은 1876년 병자수호조규(강화도조약)체결 이후 일본의 약탈무역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연히 무역을 하였고요, 중국과는 인삼, 은, 해삼, 면포, 소금, 종이등을 했고요,

    일본과는 인삼, 미곡, 소가죽, 은과 동, 무소뿔 등을 거래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과 조선은 조공 무역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처럼 조선과 명 사이에는 조공과 상사 등의 형태로 양국 사이에 이른바 관무역이 행해지는 동시에 사행의 사무역이 이루어졌는데요. 조선정부는 선진문물을 수입하고 정권의 국제적 승인을 얻어 국내 통일에 활용하는 동시에 관무역과 사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명은 명목상의 종주국으로서 그 전래의 자존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역시 조선과의 관무역과 사무역을 통해 경제적 욕망을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태종대부터 금은 세공이 면제된 세종 12년(1430) 2월 이전까지 정조·성절 및 천추사 등 정기사행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물품을 명에 조공으로 보냈습니다. 금은그릇·나전소바·백면지·각색모시·용문렴석·각색세화석·표피·달피·황모필·백면지·인삼·종마등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상 정기적인 조공품 이외에도 수시로 파견되는 사은·진하·주청사 등 각종 임시사행에게도 의례적 예물로서 여러 가지 물품을 명에 보냈습니다. 조선정부가 왕조 초기에 이상과 같이 정기 및 임시 사행을 통해 각종 물품을 조공으로 보내면, 명은 조공에 대한 답례물로서 자기·약재·예복·서적·악기·보석·弓材牛角·문방구 등을 조선에 보내왔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웃 나라와 물건을 사고 파는일은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의 일입니다.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과 무역을 하였고 특히 통일 신라시대에는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 중간에서 중계무역도 하였지요. 그리고 중국에 신라인의 마을까지 두어 왕래에 편리하게 하였다고 하며 우리 조상들은 고려시대에도 예성강 하구에서 중국을 내왕하면서 무역을 하였으며 때로는 아라비아 상인도 드나 들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하였는데 정부 사이의 무역이 중심을 이루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국내 상인들이 국경지대에서 외국 상인과 교역을 하기도 하고 사신을 따라다니며 무역을 하는일이 많아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