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차 대전의 배경과 기간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에 발칸반도에서 시작되었고 1918년 11월 11일에 종결되었으며 1700만명이 사망하고 2500만명이 부상당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고 1918년 독일이 항복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전쟁이 촉발된 것은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제가 부부를 암살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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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왜 삼국을 통일안한걸까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는 만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전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시켰을 때 수ㆍ당의 공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의 침입을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력투구를 할 수 없었고 연개소문 사후 그의 아들인 남생과 남건의 권력투쟁으로 화합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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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산 하면 유럽이 생각이 납니다. 아프리카에는 문화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럽의 시각에 의한 문화 절대주의에 따라 유럽문화-아시아 남미문화-아프리카문화 순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문화는 독자성과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유럽-아시아 남미문화-아프리카가 동등한 입장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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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순욱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자 조조의 모사로 그의 장자방이라 불리며 왕좌지재라는 단어로 유명합니다. 조조가 분무장군으로 동군에 있을 때인 191년 순욱은 원소를 버리고 조조를 따랐습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나의 자방(장량)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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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다모라고 있던데 어떤 직업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다모는 조선시대 관아에서 차를 끓이고 대접하는 일을 하던 여자 관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조선후기에는 각 관아의 성격에 맞게 차를 끓이는 일 이외에도 일도 담당하였습니다. 그 예로 포도청에서 여성 범되자를 다루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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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1997년 중국반환에 대해서 궁금한점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국과 청나라간에 벌어진 제1차 아편전쟁의 결과 청나라에 크게 패하면서 600만 달러의 전쟁 배상금과 홍콩을 100년간 할양하고 5개의 항구 개항을 요구받게 됩니다. 홍콩의 조차기간이 끝난 1997년 중국에 반환하면서 양안제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특별자치지역을 선포했지만 행정장관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홍콩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되었으며 민주화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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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해전에서 일본군이 전력이 더 강했음에도 지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42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미드웨이 제도 주변에서 벌어진 일본제국 해군과 미국 해군의 해전입니다.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미국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정점을 달리던 일본제국의 국력은 점점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항공모함 1척을 손실하는데 그친 반면 일본해군은 항공모함 4척을 손실했고 더 중요한 것은 중부태평양에서의 일본의 진격을 멈취세웠자는데 이 전투에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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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승정원이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곳으로 왕과 부서들 간의 소통을 맡아 각종 서류들을 정리해 왕에게 올려서 보고를 하고 왕의 명령을 부서에 전달하는 비서의 소임을 다하였습니다. 조선왕조가 시작될 때부터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정원 일기는 세계기록유산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보 30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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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기족을 찾습니다는 언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453시간 45분 동안 KBS가 생방송으로 방영한 이산가족찾기 운동입니다. 2015년 10월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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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가 고구려에 밀려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여는 동으로 읍루 남으로 고구려 북으로는 유목민족인 선비족 서쪽으로는 중국 한나라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부여는 고구려의 힘이 강해지자 한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견제합니다. 한나라도 선비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부여와 손을 잡습니다. 한라라가 안정적일 때 부여는 사방 2천리를 가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나라에 변화가 오면서 부여에도 시련이 닥쳐옵니다. 기원후 220년 한나라가 황건적의 난으로 멸망하고 나라가 3개로 나뉘어져 삼국시대(위 촉 오)가 되었습니다. 3국을 사마씨가 통일하지만 50여년 만에 무너지고 5호 16국시대로 혼란한 상태가 됩니다. 부여는 한나라 삼국 중 위나라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와 차례로 동맹관계를 맺고 국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5호 16국과 북위와는 적대적이었다가 결국 북위가 통일한 시기에 고구려 문자명왕(장수왕의 아들 광개토대왕의 손자)에게 투항합니다.(4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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