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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에서 식읍과 녹읍이라는 것은 왜 지급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돈이 아니라 쌀이 경제의 기본이니까월급같은 돈이 아니라 농사 할 수 있는 땅으로 일하는 대가를 주는 겁니다.그러면 쌀로 주거나 돈을 만들어 주면 될거 아니냐고 생각 할 수 있는데우선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화폐와 그것이 나라 어디서나 통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든는 것은그 세종대왕님도 결국 실패한 엄청나게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러니 신라시대땐 무리구요하급 관리들은 쌀로 받았습니다. 쌀로 받으려면 매달 몇천석쯤 받아야 하는 고급 관리들은그냥 땅자체를 주고 니가 알아서 만들라고 하는게 편했습니다또한 고대의 나라는 각각의 땅주인이 모종의 이유로 뭉쳐서 생기는 거고그 과정에서 군사력이 강하던 능력이 뛰어나던 해서 뽑히는 대표가 최초의 왕이 되는 식 입니다.그래서 각 지방은 그 지방의 귀족의 땅 이었지만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중앙집권(왕이 권력을 독점)이 진행되면서자손에게 물려 줄수 있는 식읍과 물려 줄수 없는 녹읍(즉, 받은 사람이 죽으면 왕족 땅이 되는 거죠)으로 땅의 종류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귀족과 왕족 사이의 권력 분쟁에 따라서 둘 사이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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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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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알려져 있는 홍길동전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옛날에는 컴퓨터도 프린터도 없었기 때문에대부분 책의 복사본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배껴써서 만들었으며그런 과정에서 배낀이가 자의로 편집하거나 오타가 생겨서원본이랑은 다른 내용인 것이 자주 나왔으며 이것을 이본이라고 합니다.홍길동전이 최초로 출간 된건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으로 추측되고 있는데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판본도 이거보단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원본이 없다 라는 말이 나온겁니다.예들들어 장길산 이나 선혜청 같은 단어는 18세기 이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이 단어가 들어간 판본들은 전부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이본이 확실한 거죠원본이 우리가 아는 홍길동 전이랑 같은지, 다르다면 얼마다 다른지는애초에 읽을 수가 없으니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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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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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기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야기꾼이란 직업은 거의 인류역사가 시작했을 때 부터 존재했습니다.글자가 없거나, 발명 된 후에도 지식인 일부만 배울 수 있었으니대부분 사람들은 이야기를 말로 전해 들어야 했으니까요물론 시대마다 문화도 문명도 다르니까 샤먼부터 극장까지 다양한 이야기꾼들이 존재했으며그 중에 전기수도 있는 것 입니다전기수는 18~20세기에 존재한 책을 실감나게 읽어줘서 돈을 받는 직업으로17세기 이후 한글 문학과 인쇄술이 발달하면서책이 양반들만 살 수 있는 물건에서 백성도 큰맘 먹으면 한권쯤은 살 수 있는 물건 까지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에 생긴 직업 입니다.물론 책을 아예 가지는건 극히 일부의 부자만 가능해서, 대부분은 책을 빌려 읽어야 해서현대에 부동산 투기하는 느낌으로 책한두권을 사는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애초에 문맹이라 못읽는 사람도 많으니 "책을 외워서 읽어주면 저런 사람들 한테도 책대여료를 받을 수 있겠다!" 라는 발상으로 전기수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그 후 업계경쟁을 통해 구술문학 특유의 애드리브나 연기력 같은, 책과는 다른 매력이 생기면서양반 가문에 출장을 갈 정도로 발전 했습니다.구한말에 라디오나 레코드같은 선진문물이 들어온 직후에도, 최신기계는 비싸서 전기수가 살아 남았지만라디오를 넘어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국가적으로 기초교육을 하고 도서관을 건설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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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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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왜 다시 결혼을 안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딱히 순정남이라서 재혼 안한건 아닙니다.고종은 다른 모든 왕들이 다 그렇듯 10명이 넘는 첩을 가지고 있어서 후계문제도 딱히 없었고처가 딱 한명인건 좀 특이하긴 했지만민비가 사망한 이유가 일본의 암살이란 것이 반쯤 정설일 정도로대한제국은 정치적으로 개막장 상황이었기 때문에많은 돈과 엄청난 행정력을 소모해야하는 왕비간택을 진행할 수도 없었고첩중에 누구를 승?진 시키기도 곤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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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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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미상궁과 제조상궁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던 직책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대마다 자세한 규칙은 달라지지만, 궁녀가 노비의 일종이었던 조선 초기를 제외하면최소한 양인핏줄이여야 궁녀가 될수 있었고, 양반가문 아니면 상궁 될 때까지 버티기 힘들었습니다.궁녀는 내명부 라는 부서에서 관리 했는데노비도 안되고, 병걸린 친척이 있어도 안되고, 어느정도 지식과 외모가 있어야 뽑히기 때문에어느정도 사는 양인가문이어야 도전이 가능했고감히 처의 자리에 도전 하진 못해도 첩자리는 노리고 싶었던 살짝 딸리는 양반가문들도 자주 도전했습니다.(그 유명한 장희빈도 양반가문의 서녀(추정)이죠)그리고 어찌저찌 궁녀가 된다음 입궁된지 30년쯤 되면, 상궁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거구요또한 평범한 관직과 마찬가지로, 내명부에서도 승진하려면 가문배경이 반쯤 필수적이었습니다.최소한 주위에 뿌릴 뇌물정도는 있어야 정치의 한복판에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거죠상궁의 종류 제조(담당구역의 대장), 부제조(이름 그대로), 감찰, 지밀(비서), 보모(이름 그대로)등이 있으며기미상궁은 왕의 밥상인 수라상의 음식을 미리 맛봐서 독살을 막는 역할로제조상궁(또는 큰방상궁)들 중에서 가장 신뢰받는 상궁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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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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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과 생육신은 무슨말이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생육신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즉시 벼슬을 버리고 떠난 6명의 관리입니다.정의를 위해서 권력을 모두 포기하는 절개 덕분에 조선이 망할때까지 "참된 선비"이야기할때 대표적인 예시로 나옵니다 사육신은 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은 관리들 중 대표 6명입니다.생육신중 한명인 남효온이 이걸 소재로 소설을 써서 유명해졌으며반란은 반란인데 억울한 선대 왕을 위한 반란 이었기 때문에시대마다 평가가 완전히 달라져서 현대연구에서 주요 관심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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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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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이 후사 없이 죽게되면 세자책봉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단어도 따로 없습니다왕이 최대한 오래 살아야 나라가 편하기 때문에질문같은 경우가 있어도 임금의 동생보단 차라리 방계의 어린 왕족을 입양해서 세자로 만들었구요세조같은 반란군이 아닌이상 책봉은 무조건 했고 "어린 왕족"이 받았습니다질문과 비슷한 예는 자기 동생한테 왕위를 물려준 정종이 있는데이건 애초에 정종이 왕이 된게 동생이 명분 챙기려고 꾸며낸 일이었고정종 본인도 그걸알아서 사건 터지기 전에 알아서 동생한테 "세자책봉"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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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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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을 보면 군이란 표현이 있고 조라고 표현도 하던데 무슨 차이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군은 시호겸 작위로 왕자같은 남자왕족들이 받는 것이구요조와 종은 묘호 라고 해서 왕이 죽은 다음에 받는 총평가 같은 것 입니다연산군과 광해군은 죽은뒤에 너무 쓰레기 같은 왕이라 사람들이 묘호를 못주겠다고 그래서태자때의 시호가 그대로 남은거에요정종과 단종도 각각 영안군, 노산군 이었지만, 이게 반란 당해서 어쩔 수 없이 묘호를 못받은거라후손들이 나중에 묘호를 줬지만, 연산과 광해는 그럴 사람조차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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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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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왜 이성계가 이인임의 후손이라는 잘못된 기록을 200년간 고쳐주지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게다 명분을 둘러싼 정치싸움입니다실록을 고친다는 것은 우리 나라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이며후대에 기록을 고쳐버리면 그 기록의 중립성이 흔들리게 되요거기에 그 기록이 쓰여져 있는 대명회전은 법전이기도 했습니다. 더욱 고치기 어렵죠심지어 그 잘못된 기록덕분에 조선과 외교할때 "고쳐줄까?"하면서 외교적으로 이득을 보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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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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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리 라는 말은 원래 우리나라의 고유 명사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도리는 일제시대의 잔재어로순서, 방법, 절차 라는 뜻의 段取(だんど)り가준비, 단속 등의 의미로 쓰였으며이런식의 잔재어가 잔뜩 남은 건설노동자, 속칭 노가다꾼들 쪽으로 이어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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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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