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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승려에게는 군역이 면제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니요 군역에서 빠졌습니다다만, 이게 특별 대우 받아서 면제인게 아니라천한 신분이 되서, 그러니까 한국으로 따지자면 "공익으로도 못쓸 쓰레기"라는 취급이라서 면제였으며그런대도 군대는 싫다고 빠지려고 승려하려는 놈들이 있었기 때문에도첩제 라고 해서 승려 자격증 같은걸 받은 사람만 정식으로 빠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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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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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왜 조선에 지속적으로 대장경을 요청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일본은 불교국가 였습니다. 팔만대장경 뿐만 아니라 좀 유명한 불경이면 다 가지고 싶어했습니다2 대장경은 조선의 보물 중에서 그나마 일본이 가져갈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보물이었습니다조선은 숭유억불의나라니까요. 실제로 대장경인쇄본들은 꽤 많이 가져가서 지금도 일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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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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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싸인(서명)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있고, 당연히 한자입니다주로 이름한자중 하나를 파자 하는 식으로 했습니다효령대군의 이름은 ‘보(補)니까 이걸 쪼개서 ‘의(衣)’와 ‘보(甫)를 써서 서명을 했구요왕들은 수결이라고 해서 ‘일심(一心) 이란 한자를 주로 썼습니다좀 중요한 문서면 글자 안 헷갈리게 도장을 주로 썼는데 인감도장 문화가 그래서 있는 겁니다부동산 거래나 어명 같은건 다 도장을 썼죠그리고 조선시대 이후로도 한자를 서명으로 쓴 사람은 많습니다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등의 대통령 들도 한자로 서명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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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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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은 고종이 체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효력이 있다고 본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외교담당인 외부대신 박제순이란 작자가 서명을 했구요어차피 을사늑약 자체가 그냥 서구 열강들이 딴지걸지 않도록하는명분쌓기용 요식행위 이기 때문에"나는 그런거 모른다"라는 고종의 발언은 힘으로 찍어 눌렀습니다애초에 군대 끌고 와서 각료들서명찬성할때까지 가두는 식으로 한 조약인데권력도 별로 없는 왕의 발언따위 알바 아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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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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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이던 이순신이 어떻게 명량해전에 참전할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니요 그때는 백의종군 안했습니다 원균이 칠천량( 1597년 7월)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해서조정에서 남은 인재가 이순신 장군님 밖에 없다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시켜줬어요그리고 백의 종군은 벼슬 없이 군인한다 라는 뜻 입니다그래서 이름에 "군"이 들어가는 거에요그러니 당연히 전투에도 참가할 수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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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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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자인 가나를 표기할 때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탁 이라는 일본어의 발음 규칙 때문입니다. 복합어의 뒤에 오는 첫음이 か행, さ행, た행, は행의 글자들은 탁음(점이 붙은 발음)으로 바뀌는데히라가나의 히라는 平仮라는 복합어 이기 때문에カ->が 로 바뀌는 겁니다가타는 片 한글자 라서 안바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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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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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부동산에 대해 어떻게 관리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주기적으로 양전(量田)이란 토지조사사업을 벌였고이 양전의 결과로 양전(量田)이란 토지대장을 만들었습니다가쾌 또는 집주름 이란 이름의 공인중개사 같은 사람도 있었구요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만나던 가쾌를 고용하던 해서 거래를 하고그 거래 내용을 문서로 만든 다음 관아에 가서 공증받았습니다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똑바로 밟는다면매도자, 계약증인(보통 가쾌가 담당), 그리고 서류 담당자가 따로 있다면그 사람에게도 각자 진술서를 받고매매계약서, 공증 청원서, 진술서, 공증확인서를 쭉 이어놓은 다음문서 사이사이마다 도장을 찍어서 원본인증을 남겼는데공증비용이 너무 부담되는 경우에는 그냥 무시하고 헌 계약서에 새 계약서를 계속 이어 붙이는 식으로 진행했고그래서 주기적으로 토지검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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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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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어떤 계열의 글자일까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어는 인도유럽어족 중 게르만어파(Germanic) 계열로 분류됩니다아랍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에 속합니다한국어는 한때 일본어와 동계통으로 분류된 적이 있지만그 일본어 자체도 류쿠어랑 같이 얼본어족이라는 고립어(계통이 따로 없는 독립적인 언어란 뜻)로 분류 되었기 때문에현재에는 한국어도 고립어로 따로 분류되고 있습니다그리고 세계 대부분 언어와 다르게한"글"은 창시자, 만들어진 시기, 제작목적 까지 전부다 밝혀져 있는 희귀한 경우이기 때문에언어 다음에 글자가 생게 확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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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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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에도 마약(아편)이 들어왔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물론 밀수하는 인간들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유럽에선 일본이랑 청나라에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청나라에서 사건사고들이 터지는 동안 아편이 어떤 물건인지 이해하고 정책을 세울 시간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개항하기 전은 물론 개항한 후에도 아편만은 막아내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1890년대에 이미 아편유포는 징역5~3년 짜리 범죄였으며1905년에는 아예 징역15년짜리 중범죄로 개정했죠.하지만 마약이란게 워낙 중독적인 물건이라 각사등록, 횡성신문 등당시 기록물에 마약관련 범죄가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참고논문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0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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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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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든 것은 우리나라가 맞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니요 팔만대장경은 100%목판입니다. 금속1도 없습니다.아마 세계 최고(最古가장 오래된)의 "활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 을 헷갈리신거 같습니다한반도에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게 아니구요금속 활자는 이전에 이미 중국에서 만들어진 기록이 있는데중국에선 금속활자는 커녕 그 활자로 찍어낸 책 들 도 남은게 하나도 없어서한국의 직지심체요절이 "현재 남아있는 금속활자중에" 제일 오래된 물건인 겁니다.교과서에도, 문화재청에도, 심지어 프랑스 기록에도 저렇게 쓰여져 있는데국뽕채널이나 블로그들이 최초의 활자라고 왜곡할때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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