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한 근현대로 접어드는 시기에, 당시 대한제국의 관료들은 모두 친일파가 됐나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제강점기 관료명부'라는 자료가 있는데,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활동한 관료들의 이름과 직위, 출신지 등이 있습니다. 또 '일제강점기 관료관련 기록물' 에도 인사기록이나 훈장 증이 있습니다. 모든 관료들이 친일파가 된게 아니고 일부 관려는 저항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일본의 이익이나 본인의 생존을 위해 바뀐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복날에 삼계탕을 먹게 된 유래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복날은 일년중 가장 더운날이라 체력을 보충하려고 칼로리가 높은 음식, 즉 보신탕을 먹곤 했습니다. 옛날에는 개고나 소고기를 넣어서 국물요리 해서 먹었는데 일제강점기때부터 닭고기와 인삼을 활용해 만들어 먹었다고 추정됩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 등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관서팔경에는 어떤 명승지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관서팔경은 김정희의 <관서유람기>나 이중섭의 그림 <관서팔경화>를 통해서 기록을 알 수 있습니다.철령관의 봄: 봄이 되면 산수국, 개나리, 진달래 등 다양한 꽃이 만개해 화려한 광경을 연출하는 철릉관을 둘러보세요.평양의 여름: 평양은 관서지방의 중심지로 여름에는 대동강과 대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평양성의 정원과 건축물이 볼거리입니다.안주의 가을: 안주는 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로 가을이 되면 산들이 강산강과 함께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신주의 겨울 : 신주는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로 겨울에는 신주성과 주변의 눈 덮인 산과 강이 얼어붙어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황해도의 일몰: 황해도는 간사이 지방의 서쪽 끝에 있는 섬으로 해질녘에는 황해의 파도와 하늘의 푸른빛이 어우러져 멋진 장관을 연출합니다.해주의 달빛 : 해주시는 평안남도 동쪽에 있는 도시로 달빛 아래 해주성과 그 주변의 호수와 숲이 조화롭게 보입니다.강계의 새벽: 강계는 평안북도 남쪽에 있는 도시로, 새벽녘에는 강계성과 주변 강이 안개에 가려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원산의 구름 : 원산은 평안북도 북쪽에 있는 도시로 원산과 그 주변의 계곡과 사찰이 구름에 가려져 있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 국악에서 거문고와 가야금은 어떻게 다를까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거문고의 역사가 더 오래된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때부터 있었고 이런 거문고를 보고 신라시대 때 좀 변형 시켜 만든 가야금이라고 얘기 됩니다.둘다 나무재질인데, 거문고는 여줄이고 가야금은 열두줄입니다. 거문고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힘차고 가야금은 맑습니다. 거문고는 볼펜만한 술대를 가지고 연주하는데 가야금은 손으로 뜯는 방식입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의 민속문화재에 속하는 씨름경기의 시작과 유래는 어떻게 되는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는데 삼국시대때 부터는 있었는 걸로 나옵니다. 신라시대에 금석문에 씨름하는 모습도 새겨져 있고, 고려시대에는 씨름판관이라는 관직명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링검도>라는 책에 씨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이 많습니다.씨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이고 1983년에 지정됐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돼있고, 고유무술이라는거 자체가 그 나라의 전통적인 무술을 말하니 고유무술에도 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왜 사이가 나쁜 건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종교 문화 영토 등으로 갈등이 많았습니다. 특히 1923년에는 서로 전쟁을 치른 끝에 인구를 교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튀르키예에 사는 그리스 정교도와 그리스에 사는 무슬림의 인구를 교환 한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발칸전쟁, 그리스 독립전쟁 등 계속 갈등이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백성들은 주로 어떤 옷을 입고 지냈나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국대전>을 보면 "백성의 옷차림은 공경하고 단정하여야 하며, 황색이나 명주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은장도를 찰 수 없으며, 저고리나 겉옷의 깃에 동정을 달아야 한다. 동정의 이를 꼭 맞추어 입어야 하며, 고름매듭이 곱게 되도록 매야 한다. 머리쓰개를 언제나 똑바로 써야 하며, 버선을 발에 꼭 맞게 신어야 한다. 부엌일이나 그밖의 궂은 일을 할 때에는 깨끗한 앞치마를 둘러야 한다. 그리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게,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게 옷차림을 항상 단정히 해야 한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그래서 주로 흰색이나, 회색, 갈색 옷을 입었습니다. 봄 가을에는 저고리 치마를 입었고, 여름은 베, 모시옷, 겨을은 솜옷을 껴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러시아와 조선이 최초로 외교적으로 접촉한 것이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84년의 조로수호통상조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의도는 조선이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좀 벗어날려고 한 것입니다. 이걸 계기로 러시하 군함은 어느 항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수리도 할 수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더치페이의 유래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더치트릿이라고 한턱내는 문화가 있습니다. 근데 과거 영국인들이 대항해시대일때 무역에서 네덜란드인들한테 장사술을 못 따라잡는데 분한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를 뜻하는 더치를 안좋은 쪽으로 쓰기 시작했고, 한턱 낸다는 더치트릿을 더치페이로 쓰고 이거를 같이 먹고 각자 따로 계산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꿨습니다.참고로 뿜빠이라는 말도 우리가 쓰는데 이는 일본의 분배를 뜻하는 말에서 왔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의 사교육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간재를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보니 인력이 중요 했고 인재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명문대에 보내는것 = 성공이라는 계산이 되었고 이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교육이 치열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래서 사회가 구조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출발하고 학력 높고 대기업 다니고 의사 변호사 검사 되고 이런게 성공이고 다른건 조금 차별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사교육이 심해졌습니다.그렇다 보니 수업이 시험을 위해 존재하고 시험만 잘 보면 되니까 주입식 암기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