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적은. 몇 번이나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이 한반도 지역을 침략 또는 약탈한 횟수는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라시대 왜구 침략 (삼국사기 ) : 20회2) 고려시대 왜구 침략 (고려사 ) : 515회3) 조선시대 왜구 침략 (조선왕조실록) : 178회4) 대한제국 일제 침략 (1910∼1945, 식민지시대 포함): 1회 로 총 714회 있었다고 합니다. 해당 횟수는 해변 마을이나 국경 지역에서의 노략질까지 포함한 기록이고 전쟁이나 국토 침탈만 본다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시대로 국한되는데 아래의 3회로 기간으로 보면 총 50년간 전쟁 수준 이상의 침략과 침탈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1) 임진왜란 4년 (1592~1596) - 도요토미 히데요시2) 정유재란 1년 (1597~1598) - 도요토미 히데요시3) 일제강점기 45년 (1910~1945) - 메이지 덴노
평가
응원하기
인류가 언제부터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상 만물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것의 용도와 모양, 의미에 따라서 각기 다릅니다. 그에 따라 불려지고 구분되어지는 것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태초부터 사물과 동물을 명명하였다고 판단됩니다. 성경에서 보더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BC 2천년경에 제작된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명명백백한 것을 보면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다만 그 불려지던 이름이 증명되는 것은 문자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입니다. 처음 이름을 사용한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처럼 흘러온 것이니 시간의 시작을 특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않을까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소설이라는 문학을 가장 먼저 만든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설의 기원은 각 나라나 민족의 신화, 서사시 등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가 가장 먼저 만들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서양에서 근대적 소설의 바탕이 된 것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것은 기사들의 영웅담 등을 소재로 한 로망스입니다. 특히 로망스에서 프랑스 남부의 기사 영웅담은 환상적으로 미화된 기사가 주인공이 되어, 권선징악의 주제를 이끌며 낭만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가는데, 이것들이 여러 방향으로 변형되어, 현재 환상적 무용담이나 연애담을 뜻하는 로맨스라는 장르로 남았다 합니다. 한국의 춘향전도 이러한 성격을 다분히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근대 소설을 뜻하는 영어의 Novel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Novella에서 온 것으로 이 말은 새로운 것, 신기한 것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노벨라는 데카메론과 같이 현실의 세태를 반영한 이야기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나누어지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구분은 간단합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시점은 고려시대였고, 이후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려의 색을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호를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당시 강국이었던 명나라에 새롭게 조선이라는 국호로 외교적으로도 인정받았던 시점부터 고려 시대는 막을 내리고 조선시대가 시작된 것이라 보면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점묘화란 무엇이며, 이 예술 형식의 주요 특징과 특유한 스타일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점묘화는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화법으로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쇠라가 개발했다고 알려져있고, 그의 동료인 폴 시냑도 함께 점묘화의 개발에 이바지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신인상주의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보통의 그림의 경우 선이나 면을 물감으로 칠해서 표현하는데 점묘화는 그 선이나 면을 점으로 찍어서 표현하고 명암등을 구분할 때 농도를 달리한 점을 찍어 그라디에이션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그 점들이 드러나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멀리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는 일반 유화와 같은 느낌입니다. 즉 터치의 방법이 점으로 표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점묘화는 상당히 과학적인 원리가 들어가 있는 그림으로 빛과 물감의 차이를 인지하고, 색이 섞여지면 탁해지고 검은 색에 가까워진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점묘법으로 찍은 여러 점에서 반사되는 빛을 우리의 시각이 각기 다른 빛이 아닌 여러 빛이 섞인 색으로 인식한다는 원리로 색의 조화를 표현하였습니다. 즉 물감은 섞이면 탁해지지만, 점묘법으로 찍은 물감들은 섞이지 않고 반사되는 그 빛이 섞이는 것이므로 훨씬 밝고 선명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묘화의 원리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의 이미지를 화면에 표출하는 방식과도 다르지 않는 최첨단의 과학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제사나 차례지낼때 술잔을 향불위에서 두번돌려서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초에 불을 붙이고, 향을 피우는 이유는 조상의 영혼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를 올릴 때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려 상에 올리는 행위가 제단 앞에 있는 향 위를 지나다 보니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행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오른쪽으로 몇 번 왼쪽으로 몇 번 돌리는 집도 있고, 향 연기에 한번 그을리는 정도로 하고 술잔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한 설이 없으니 음향오행에 의해 제사상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6시-9시-12시-3시 또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집안도 있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하다는 집안도 있고, 잔을 돌리지 않고 그냥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린다는 집안도 있고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이유로 다르게 이어져 왔는지는 모르나 그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각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에 대해 존중하고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역사 속 공신으로 인정되면 특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시대에도 녹공을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공신책봉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는 듯 합니다. 고려 때는 공신의 경우 토지와 노비를 내리고, 무신정권 이후에는 그 자손에게도 특혜를 대물림하게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져 그 명칭만 달리하였다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신의 정도를 더욱 세분화하여 1~4등 공신 등 등급을 나누어 그에 따른 특혜의 정도도 달리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공신호는 개국공신부터 시작하여 총 28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근현대사 관련서적보다가 조세형이란인물이 있던데 왜 대도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 조세형이라는 사람은 1970~80년대 전과 17범으로 유명한 절도범이었습니다. 그가 유명인사의 집도 많이 털었기 때문에 별명이 대도 조세형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전직 국회의원, 현직 부총리, 유명기업 사장, 국내 재벌가 딸의 집 등에서 엄청난 명품들을 훔쳤기에 그랬습니다. 조세형은 밤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낮에 부자집만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였습니다. 부자들이 뒤가 구려서 잘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훔칠 것이 많아도 딱 20분만에 작업을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집은 나라망신이라 털지 않고, 판검사의 집도 털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검사의 집은 자신은 잡히지 않겠지만, 다른 절도범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훔친 돈 및 재물의 30%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정치인,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심했으니까요. 하지만 조세형은 그냥 절도범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미래에는 어떤 욕구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명이 고도화됨에 따라서 더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최근 대두되어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넘쳐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AI 기술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경우 그 독점을 특정 포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로 인해 미래는 이러한 데이터 전쟁이 될 것이고, 그것이 현재 SNS 등의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일부 돈을 주어서라도 개인정보 확보에 구글, 네이버 등등의 회사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분위기대로 흘러가면, 데이터는 상위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이용한 대중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제시하여 일반 대중들은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대로 선택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게 하고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심리적으로 협소한 선택을 하게 될 우려도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욕구가 인간을 지배할 것인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식욕, 성욕, 수면욕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유지되겠지만 그 유지의 형태가 영화에서처럼 기계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아날로그를 선호합니다. 일부러라도 몇 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디지털에 의지하지 않고, 아날로그화 하여 그 감성을 직접 느끼는 것이 좋습니다. 디지털이 너무나도 세상을 편하게 하고 발전시켜왔지만, 인간의 가치까지 디지털화되는 것은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라 그다지 좋지는 않네요.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그냥 지금처럼 그대로이기를 바랍니다.
평가
응원하기
대중가요를 언제부터 트롯트라고 불렀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칭이 여러가지로 불리다 보니 혼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가요는 '민요, 동요, 유행가 등 노래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 중 대중가요라고 명명한 것은 그러한 노래들 중 '널리 대중이 즐겨부르는 노래'라고 하여 가요에 대중이라고 일반화하여 명명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대중가요 의 한 장르로 트로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장르로는 발라드, 락, 힙합 등 그 분위기와 형태에 따라 구분하고 있고 그 각 장르 내에서도 더욱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1880년대 일본의 엔카가 메이지유신 연설을 위한 곡으로 초기에 만들어졌다가 1914년 4/4박자의 폭스 트로트라는 장르가 들어와 결합되면서 지금의 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일제 식민 치하에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변형되어 2/4박자 즉 '뽕짝'이라는 트로트가 시작되어 지금에까지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전까지는 일본식의 엔카와 우리나라의 트로트 장르가 혼재되어 비슷하게 발전하다가, 이후 우리나라의 트로트는 엔카와는 다르게 발전하였고, 1960년대~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르의 대중가요인 서양의 팝음악, 발라드, 락, 댄스가요 등이 1980년대부터 발전하여 트로트가 잠시 주춤하다가 최근에 들어와서 여러 케이블 방송에서 트로트가 이슈화되면서 다시금 인기가 살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