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길 이라는 시의 문학적 표현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학적 표현이라는 말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질문하신 분의 생각은 시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며, 어떤 구절에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인가를 물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문학작품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윤동주와 같은 식민지 시대적 상황을 가진 작가의 작품의 경우 그 시대상에 따른 고민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윤동주의 길의 첫 연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잃어버렸습니다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에 나아갑니다/일제 식민지 시대의 지식으로서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데요. 첫 구절에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강조한 후, 그 잃어버린 것을 주변이 아니 자신의 주머니를 더듬어 찾는 것으로 볼 때 외면이 아닌 내면적이 어떤 것에 대한 상실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간 길은 그 내면의 상실을 극복하고 찾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돌담은 화자가 찾아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를 방해하는 벽과 같고 그 곳을 통하는 문조차 굳게 닫혀 답답한 심정을 나타냅니다./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 길은 자신을 목적지에 다다르게 할 것이기에 멈추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돌담은 자신의 성찰을 가로막는 막막함과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저렇게도 순수하고 푸른 하늘을 보면 다시금 나약해진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계속 길을 나아가게 된다는 모습을 보입니다./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성찰의 과정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분명 자신이 갈구하는 지식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자신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며 이 길을 걷는 이유를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고 표현하며 당연히 잃었으니 찾아야 하는 당위성과 그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길'은 '서시'과 이어지는 맥락으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양심에 대한 고뇌를 잘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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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망한 이후 말갈족들은 추후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 멸망 이후 말갈은 대중상,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 세력과 함께 세력을 규합하여 대진국 발해를 건국하는 주축 세력이 됩니다. 그리고 대진국 발해 멸망 이후에는 거란은 7부족의 말갈을 통틀어서 여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여진은 고려를 거치면서 한민족에 동화되었고, 일부가 압록강, 두만강 위로 이주하여 살면서 금나라와 청나라를 건국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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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이스라엘은 같은 민족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팔레스타인인은 시오니즘에 따라서 유럽 등지에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았던 아랍인들을 말합니다. 현대의 팔레스타인인은 과거 동로마의 통치를 받던 해당 지역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후손들이 정통 칼리파 아랍 무슬림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아랍어를 쓰게 되면서 새롭게 집단화된 지역 민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인, 사마리아인 등 중동의 많은 민족들이 이런 식으로 아랍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지역의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과 그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으나 현재는 여러가지 이유로 같은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리메이슨의 수장이었던 알버트 파이크의 말처럼 공산주의가 대두하고, 유대인들은 국제연합(UN)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되는데 문제는 과거 자신들의 성지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예루살렘 등 포함)으로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수천 년을 살아오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밀려나게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중동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됩니다. 1993년에 와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평화 협정을 맺고, 평화 협정의 체결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세워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정적인 싸움은 여기저기서 나타났고,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정부는 이스라엘과 대치하여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반대하던 민중봉기를 틈타 기존의 이스라엘 저항운동을 이끌던 PLO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마스라는 무장조직의 성장을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의 분열을 꾀한 것이겠죠. 하지만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협상을 하면서 저항운동을 하던 PLO와는 달리 하마스는 무장투쟁을 이끌었기에 이스라엘과 많은 전쟁을 하게 되고 급기야는 기존의 파타 정부를 선거에서도 이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력까지 얻게 됩니다. 하마스는 현재 이스라엘 영토를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슬람의 땅으로 규정하고 무장투쟁을 하였고, 이스라엘은 그렇게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에 대응하여 가자지구를 봉쇄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을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은 가자지구인 것이고, 서안지구의 경우는 현재 이스라엘의 정치군사적 영향력 하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중립을 잘 지켜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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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은 왜 미이라를 만들었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집트는 사자(죽은자)의 신 오시리스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집트이 왕이었는데 동생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가 다시 살아돌아올 것을 걱정한 동생이 시신을 조각내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오시리스의 부인이자 누이인 이시스가 그 시신 조각들을 모아다가 살리기 위해 지금의 미이라와 같은 형태로 만들었고, 주술로 살려내려고 하였으나 완전히 살려내지 못하고 저승의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죽은 이가 다시 살아올 것을 기대하고 그 영혼이 돌아왔을 때 온전한 몸이 보존되어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이라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미이라를 만들 때 내부 장기들은 따로 항아리 등에 넣어 보관하였는데 심장은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사자의 신 오시리스에게 심판 받을 때 심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누비스 신이 저승에서 죽은 자의 심장과 깃털을 무게를 저울에 달아 깃털보다 무거우면 악어 머리를 한 암무트 신이 그 심장을 삼켜버리고 내세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평생을 착하게 살아온 사람은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워 내세의 삶을 보장받는다고 하니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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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성지인 종교에는 어떤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입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파생되어 나온 것이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종교의 성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이 서로 전쟁하며 주고 받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이 곳이 성지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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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생선맡겼다는 표현은 어떨때 사용하는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말은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방치했다는 말로 쓸 수 있는데 보통은 부정적인 비리, 절도, 배신 등의 일에 대해 잘못된 믿음의 결과를 한탄할 때 쓰는 말입니다.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라고 시킨다면 10중 8, 9의 고양이는 그 생선을 지키지 못하고 먹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과거에 다른 회사에서 횡령 등 전과가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정말 믿는 사람이라며 회사의 경영을 맡겼는데, 회사돈을 횡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면, 이런 상황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이러한 표현을 할 때에는 '그 사람=고양이' 이므로 충분히 비리를 저지를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일을 맡긴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횡령이라는 비리가 발생한 것이 고양이의 탓인지, 먹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맡긴 이의 탓인지는 이견이 많습니다. 사람을 잘 보고 써야 한다는 의미겠죠.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전혀 그럴 줄을 모르고 맡겼는데 어떤 사고가 났다 하면 보통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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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님은 어릴 적부터 뛰어난 능력을 보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순신과 어릴 적부터 친분이 있던 류성룡의 <징비록>에 언급한 것을 보면, 어릴 때부터 이순신은 영리하고 활달했으며, 아이들과 놀 때 나무를 깎아 만든 활을 가지고 다녔으며,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애나 어른이나 눈을 쏘아 맞출 듯이 하여 나이든 어른들도 그 집 앞을 지나다니기를 꺼렸다고 언급할 정도로 적잖게 드센 성격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으나 장군감이었다고는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없고, 원래 형제들과 함께 문과 공부를 하다가 21세에 혼인을 하고 22세에 장인의 권유로 무과로 진로를 틀어 무예 수련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객관화하고 성공을 위해 진로를 변경한 결정력을 보면 훗날 장수로서의 단호한 결단력이 빛났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순신의 일화로 소개되는 무과를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버드나무 가지로 다리를 묶어 남은 시험에 응했다는 강한 정신력의 소개는 박수칠 수는 있으나 당 무과에는 낙방하였습니다. 이 때가 28세 때이고 결국 31세 때 무과에 응시에 병과로 합격하게 됩니다.무과에 합격한 이후 이순신은 원리원칙대로 하는 성격에 주변 사람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하는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에야 강직하고 청렴결백하다고 칭찬할 수 있으나 조직 내에서의 융통성을 이해해주지 않는 이순신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인물들도 더러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직함과 오로지 일과 나라에 대한 충성이 임진왜란을 극복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으니 그를 존경하고, 신격화 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임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성웅 이순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뛰어난 능력은 확인할 방법이 없으나 여러 일화로 보아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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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공짜로 계속해서 받는다면 그선물을받는 사람은 어떤심리를 갖게될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선물에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친구 사이의 단순한 생일 등의 축하 선물이라면 그렇구요. 하지만 반복되는 선물이라던지 연인 등의 관계가 아닌데 특별한 날(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크리스마스, 명절, 생일 등) 계속 선물을 하게 된다면 받는 사람은 부담과 선물하는 사람의 의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거절하던가 자신도 보답을 하던가 하겠죠. 그렇지 않은데도 계속 한쪽은 선물을 하고, 한쪽은 선물을 습관적으로 받는다면 받는 사람의 위치가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갑의 위치를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쪽의 관계인지는 모르나 받는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나 의견이 없다면 주는 쪽에서 주는 의도와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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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는 어떤 특성을 가진 교유기관 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학습자 중심의 자율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만들어진 종래의 학교교육과는 다른 학교입니다. 대안교육은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안학교 중에는 학력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이 후자입니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나온 경우 향후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안학교는 특별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는 아닙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부모의 교육관이 그 결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공교육에 대한 불신 등이 있는 경우 좀더 나은 학교환경을 위해 부모가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전인교육 등을 내세우며 예전보다는 좀더 많은 대안학교가 생겨나고 있지만, 공교육 기관이 아닌 대안학교를 보낼 때는 잘 확인하여 그 가치가 오랜 기간 운영을 통해 증명된 곳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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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온함을 깨트리는 아주 좋지 않은 방법인듯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고 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쟁은 인류 역사상 있어서는 안되는 비극이지만, 과거에는 인류가 무리를 이루어서 살고 그 규모가 커져가면서 생존을 위해 발생되었었습니다. 전쟁을 위해서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하고, 무기의 생산과 공급, 무기의 고도와 등이 동반되어야 했습니다. 구석기시대부터 본다면 주먹도끼에서 좀더 날카롭고 정교한 돌을 이용한 무기가 개발되고, 이후 자연에서 금속을 추출하고 제련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청동기가 개발되었으며, 그보다 더 강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가벼운 철기가 발명되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던지던 돌을 더 큰 돌로 더 멀리 던지기 위해 투석기가 개발되었고, 상대의 성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가지 공성기계들이 발명되었습니다. 이처럼 전쟁과 함께 과학기술과 그에 따른 산업이 발전해왔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전쟁의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을 하면 사람들이 다치고 사망하니 인구조절의 순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므로 순기능이라고 구분하지는 않겠습니다. 과거에는 그랬다고 하지만, 현재에 들어서는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많은 연구를 통해 과학이 발전하고 있고,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닌 작물의 재배와 보관, 유통에 대한 기술들도 별도로 발달하고 있으니 그냥 전쟁은 해롭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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