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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라는 이름은 언제 부터 쓰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습니다.‘언문’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언문청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바로 ‘언문’이라는 말도 나타납니다. 이후에 ‘언서’라고도 하였는데, 이것은 한문을 ‘진서’라 한 데 대립시킨 말로 한문에 비해 낮춰 부른 말이 아닌가 합니다.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반절’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암클’이라는 이름도 쓰였는데, 이는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뜻으로 선비가 쓸 만한 글은 되지 못한다는 한글을 폄하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합니다.1908년 주시경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친 후, 1913년 4월에는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다고 합니다.이 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하나, 제대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한글≫이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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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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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보면 대범하다 대담하다 이런류의 비슷한것이 있는데 차이는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범하다'는 성격이나 태도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럽다는 뜻이고, '대담하다'는 담력이 크고 용감하다라는 뜻입니다. 대범은 긍정적 의미로 쓰이고, 대담은 긍정적/부정적 양쪽 모두 쓰입니다. 각 단어의 반대의미인 '소심하다' vs '소담하다'도 한 글자 차이인데 각 의미는 '겁이 많고 배짱이 없다' vs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로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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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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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지배층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발해는 본래 국호인 대진국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에서 동쪽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자신들의 속국으로 책봉하는 문서에 발해국왕이라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상 이후 대조영이 황제에 오르며 대 진국이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잡하게도 당시 일본과의 외교문서에는 고려왕이라 명기하여 보내 고구려 멸망 이후 재건된 후고구려의 국호도 썼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일본도 초기에 고려라 부르다 사이가 멀어진 후 깎아내리며 당시 당과 같이 국제적으로 발해라 불렀다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해는 대진국이 맞습니다. 그리고 황제국가 입니다. 대조영은 천통, 무예는 인안, 흠무는 대흥의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당시 당의 속국이면 연호를 당을 따라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 주장하는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도 제목도 '대진국'이라 하고 방영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국호와 당 중심이었던 당시 국제적 상황을 감안하여 둘다 포함하는 '대진국 발해'라 하는게 좋겠네요.대진국 발해는 고구려인이 지배계층이고 말갈인은 피지배계층이었나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주축이 되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대조영이 왕으로 추대되어 왕족이 되었고 골고루 등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시몽, 오차지몽, 미발계 등 말갈계 발해 지배층이 기록으로 남아 있고, 대진국 발해가 차지한 영토는 원래 고구려의 영토로 고구려인들이 터전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혼재된 구조이나 고구려계는 지배층, 말갈계는 피지배층으로 구분되어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죠.그리고 대진국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나 말갈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진국 발해의 귀족은 왕족인 대씨(大氏)를 비롯하여 고씨(高氏), 장씨(張氏), 양씨(楊氏), 두씨(竇氏), 오씨(烏氏), 이씨(李氏)의 여섯 우성망족(右姓望族)이라 불리는 유력 귀족집단이 존재하였고 이들이 발해의 외교, 군사, 정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고, 장, 이씨는 고구려계, 오, 양씨는 말갈계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두씨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외 하(賀), 왕(王), 임(任), 해(解),수(受), 율(聿), 배(裵), 박(朴), 최(崔)씨 등의 부여계, 고구려계, 말갈계를 비롯한 중국계, 신라계도 포함된 49개 족성(일반귀족)이 존재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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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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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0월9일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연구가 발전을 기원하는 뜻에서 정해진 국경일입니다. 과거 1926년 11월 4일에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맞아 '가갸날'로 칭하고 기념하였습니다. 당시 1926년 11월4일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완성을 기록한 세종실록의 음력 9월 29일을 당시의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었습니다. 1927년 조선어연구회에서 <한글>이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알려지자 1928년에 '가갸날'을 지금과 같은 '한글날'로 변경을 하였다 합니다. 이후 음력으로 매년 기념하는 날이 달라지는 것을 복잡하다 여겨 1931년에 양력 10월 29일로 변경 고정하였고, 1934년에 양력 환산에 오류가 있었다고 하여 10월 28일로 개정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 책의 말미에 훈민정음 해례본의 간행 시점이 1446년(세종 28년) 9월 상한(上澣)임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상한은 상순(上旬)의 뜻으로 1일에서 10일까지라 이 기록에 따라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집회금지로 인해 한글날의 기념집회가 중지되었다가 1945년 10월 9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진행되었고, 1946년에는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다가 1949년에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합니다. 이후 1982년에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으나, 공휴일이 너무 많다고 하여 1990년에 폐지되었다가 다시 2005년에 국경일법이 개정되어 '한글날'이 법정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2012년 11월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2013년부터 적용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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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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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성악설의 근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자가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반대의견을 갖게 된 이유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순자는 활동한 시기는 진시황이 통일을 앞둔 전국시대 말기였습니다. 550여 년간 지속된 춘추전국시대의 마지막으로 전쟁, 분열과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시대적 모순과 혼란을 바로잡는 것을 철학의 실천적 과제로 삼고자 한 순자에게 맹자의 '성선설'은 실재가 아닌 관념적인 주장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고, 선(善)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善)이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위적인 교육과 교화로서만 가질 수 있음을 피력하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惡)하기 때문에 침략과 전쟁 등이 발생하는 것이고, 전쟁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교육이라는 인위적 훈련과 예(禮)라는 사회 제도에 따라 인간의 성향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악설은 인간의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을 교육을 통해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지, 인간이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아동학대를 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은 욕망에 의해 방종하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그 욕망을 따라 행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의, 제도, 교육을 통해서 선을 인위적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선을 잡기 위해 아동학대를 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라는 그릇된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므로, 옳지 않고 순자의 성악설을 근거로 한다고 하더라도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순자가 이야기한 예는 법을 뜻하고, 법치를 통해 인간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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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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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고조선 건국날짜는 어떻게 알수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역사학적으로 10월 3일이 고조선의 건국일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일자는 불명확하고, 실제 청동기 시대 국가들은 부족 사회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하지만 민족 전통종교이자 단군을 신성시했던 대종교의 경전인 삼일신고에서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시대를 지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터 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됩니다.치화란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의 말로, 그래서 그 시기를 부족사회에서 국가의 개념으로 바뀐 시기로 보고 그것을 하늘이 열렸다 하였고, 이후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그 날을 국경일로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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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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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가 정말 알에서 태어 났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 대한 신화입니다. 그 진위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시조를 신령스럽게 하기 위한 이야기라 봅니다. 삼한의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로 경주 지방의 6촌의 연합국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경주 지방에는 고조선의 유민들이 촌을 이루고 살았고 각각 촌장이 있었는데 어느 날, 우물 근처 숲에서 하얀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니 말은 하늘로 날아가고 커다란 자줏빛 알 하나만 남아 촌장들은 알을 깨뜨렸고, 그 속에서 갓난아기가 나왔는데, 이 아이가 바로 박혁거세입니다. 그는 탄생부터 남달라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태어난 큰 알이 박과 같았으므로 성을 박(朴)으로 세상을 빛나게 한다하여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다 합니다. 박혁거세는 임금으로 추대되었고, 서라벌이라 하고 이후 신라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곁에 말이 있었다는 설화에 기마민족의 후예가 이주하여 자리잡은 것에 대한 신화가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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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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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는 과정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각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SBS 아카데미, MBC 아카데미 등이 있고, 서울예술실용학교, 한국시나리오연구소 등 사설 교육기관도 있습니다. 아니면 대학교에 편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또 kmong 같은 곳에서 현직 시나리오 작가가 개인레슨 하는 것도 있습니다. 가격은 몇십만원에서 기간 등에 따라 그 이상도 있는 천차만별이니 해당 기관에 직접 문의하시는 것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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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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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이오전쟁 전후에 공산주의자를 빨치산으로 부른이유와 그시작이 궁금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빨치산은 러시아어인 파르티잔에서 파생된 단어로 적의 배후에서 통신ㆍ교통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기나 물자를 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비정규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6ㆍ25 전쟁 전후에 각지에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를 이르는 말입니다.[표준국어대사전 참조]빨치산으로 불리던 군사조직의 원래명칭은 조선인민유격대였는데 태백산맥과 함께 소백산맥의 지리산에 그 본부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남로당 출신의 지지를 받던 이들 조직이었으나 북한의 김일성에게 남로당의 박헌영과 리승엽 등이 숙청되고 지원이 끊어지게 됩니다. 북한으로부터도 버림받았죠.이후 대한민국 토벌대로 인해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리산 본부만 남았는데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게 유격대를 데려가라 했는데 되려 산을 내려가 지하활동을 계속 하라는 지령만 주었고, 산을 내려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이니 끝까지 버티며 저항했고 결국은 괴멸됩니다.그들 조직이 지리산 등지의 산악지형에 본부를 두고 있었기에 빨치산이란 이름을 산인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그 의미가 굳어진 것은 아닙니다. 처음 쓴 사람이 누구라고 확인 된 바는 없고 러시아어 파르티잔 Partizan을 불어식 & 영어식, 러시아어식 발음을 섞어 한국화되어 빨치산이라 불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Parti빠르티는 동지를 뜻하는 불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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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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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불교가 쇠퇴한 결정적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도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힌두교를 믿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인도 문명인 아리안문명, 브라만문명 모두 힌두교라고 합니다. 그 당시 인도는 신에 대한 믿음을 중시하는 종교, 사색을 중시하는 철학이 발달한 사회였습니다. 당시는 힌두교라고 하지 않고 브라만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브라만교를 신봉하는데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고, 이에 브라만교와 철학에서 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펼치는 사문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됩니다. 일종의 신흥사상가들이죠. 고타마 싯다르타는 브라만교 전통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지만 이러한 사상들에 관심을 가져 사문의 지도자에게 사사를 받습니다. 오랜 세월 사사를 받으며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완전한 해탈을 이룰 수 없었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고행 끝에 중도의 길이 곧 해탈의 길임을 깨닫고 부처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설파하며 살아갑니다. 부처 사후 200년 후 아쇼카 왕 시기에 불교가 가장 왕성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바라는 복을 이루는 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했고 그래서 힌두교의 종교적인 형식들을 빌어오게 됩니다. 그것이 발전한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겨난 것이 바즈라야나 불교입니다. 밀교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거의 힌두교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교가 사상이 아닌 종교화되면서 거의 힌두교와 구분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처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얻은 이가 아닌 신이 되고, 승려 등이 계급화되고 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종교적 철학적 의미만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3세기 무슬림이 인도를 침략하여 절을 파괴하고, 승려를 죽이고, 경전을 불태워 짧은 시기에 쇠퇴해버렸습니다. 대중들은 신께 복을 빌고 기도하는 것은 불교나 힌두교나 동일하였기에 힌두교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고, 무슬림이 힌두교는 민간신앙이다 보니 다죽이지 않는 한 완전히 없앨 수 없었고, 이후 민간신앙이던 힌두교가 불교의 영향으로 철학적으로도 정비되어 지금은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주가 되어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형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현재의 힌두교에 스며들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신의 아홉번째 화신을 부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힌두교가 아니고 불교의 모든 것을 흡수한 하이브리드화 된 힌두교가 인도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여전히 인도에도 불교신자가 6~700만명 정도 있습니다. 많은 것 같지만 인구대비하면 0.5%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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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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