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맹세할 때 스틱스강을언급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제우스등의 올림포스 신들이 티탄족 신들과 전쟁을 벌일 때, 스틱스 여신은 다른 신들과 더불어 올림포스 신들편에 서서 싸웠고, 큰 공적을 세웁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주신인 제우스는 신들이 맹세를 할때 모든 신들이 스틱스강을 걸고 맹세를 하도록 지시합니다. 이는 지상과 명계를 구분 짓는 스틱스강의 신성함과 절대성을 빌려 약속과 맹세의 엄중함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입니다. 스틱스강을 걸고 한 맹세를 어기게 되면 비록 신일지라도 벌(1년의 혼수상태와 9년 동안 올림포스에서 추방)을 받게 됩니다.결론적으로, 전쟁에서 스틱스 여신의 공헌에 대한 제우스의 보답으로, 스틱스강은 신성함을 가진 맹세의 강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감사합니다.
Q. 만약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생명은 여전히 고귀할까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어떤 것이 고귀한 이유는 그것이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면, '살아있음'이라는 가치의 희소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생명의 고귀함이라는 가치 역시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생명이외의 다른 가치가 주목 받게 될 것입니다. 가령, 영생을 누리게 되니 나태함이 가장 큰 삶의 적이 될 것이고 그 나태함을 없게주는 여러 오락거리, 퇴폐적 활동들이 주목 받게 될 것이고, 이는 심지어 범죄로 이질 가능성도 커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죽지 않으니 자원이 너무도 빨리 고갈 될 것이고,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자원 분배에 대한 문제와 갈등, 계급의 고착화로 인한 문제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결론적으로, '살아있음'의 보편성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갈등이 초래될 것이고, 그 갈등을 봉합할 리더십과 윤리가 희소한 가치로 정립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Q. 언어는 인간의 사고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인간의 언어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언어결정론'이라고 부릅니다. 이 언어결정론에서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결정 짓기 때문에, 만약 언어가 없다면 사고 자체가 불가능 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는 강한 버전과 약한 버전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언어가 없으면 사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강한 버전이고, 약한 버전은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세상에 대한 인식과 집중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입니다.강한 버전은 반례(언어가 다르지만 대상에 대한 인식이 동일한 경우 등)가 많이 존재하고, 극단적인 주장이어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약한 버전(언어는 인식과 개념화에 영향을 준다)은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고, 유효한 이론으로 수용되어 왔습니다.가령, 실체가 없는 감정이나 느낌의 경우, 해당하는 감정이나 느낌의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다면 그 감정이나 느낌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존재합니다. 얘를 들어, 한국인의 한(恨)이나, 정(情)이라는 감정은 한자 문화권 이외에는 대체될 수 있는 단어도 없고, 심지어 한자 문화권 내에서도 온전히 그 느낌을 번역하기 옮기기도 어렵습니다. 다른 외국어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 이겠습니다(예를 들어 덴마크의 휘게(Hygge).그러나, 항상 수직적으로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사고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 되고 있고, 현대 언어학에서는 이 둘의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견해가 널리 인정 받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Q. 자국어보다 외국어를 더 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자국어보다 외국어를 더 잘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우선,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표준적인 대한민국 국민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엉망으로 구사하면서 외국어만을 잘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어를 엉망으로 구사하는 것을 본다면 그사람의 외국어 실력도 의심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국어가 잘 정돈되지 못하면 영어 실려도 그렇게 크게 성장하지 못합니다.두 번째로, 이주한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이주민 2, 3 세대 한국인입니다. 그들의 비록 국적은 한국인 이라도 나고 자란 곳은 외국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실질적인 모국어인 외국어를 잘하고, 한국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다.따라서, 첫 경우에서 처럼, 한국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 한국어는 엉망인데, 외국어만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직장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 국어 능력의 부족으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고, 문서를 잘 작성 하지 못하여, 타 부서 및 타 기관과의 업무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그의 외국어 능력은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의 외국어 능력이 번역이나 통역에 이용된다면, 그 문제는 한층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결론적으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큰 장점이 되겠으나, 그 사람의 모국어 능력이 형편 없다면, 그 사람의 인간 관계적, 사회적, 업무적 신뢰성은 인정받지 못하게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
Q.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 우선, 질문주신 문제의 시회적 측면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예전 사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비교적 제한되었고,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은 한 곳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도 그 지역을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인간관계는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인 측면이 강하였고,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서 살아남아, 혼인하고 자손을 볼 수 있으려면, 그 공통체의 규칙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좋든 싫든 주변의 사람들과 친근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산업화 중후기인 1980년대까지 그럭저럭 유지되어 오다가, 현재는 오지의 농촌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적 관점에서, 농업과 봉건적 사회질서에 근거한 그러한 유기적 관계는 복원하기 불가능하고, 그러한 관계의 긍정적 측면이 부정적 측면을 압도할 만큼 크다할 수 없어, 그러한 관계 복원의 필요성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다음으로, 개인적인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전부터 우리가 가져온 인간관계의 친밀성과 지속성은 위에 언급한 사회적 측면의 맥락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농업사회나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밟아가는 삶의 단계가 거의 유사하고, 지역적으로로 얽혀 있어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큰 용이함이 있었으나, 현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사람들의 삶에서 유사성은 찾아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또한, 예전에 비하여 생각과 양심, 사상과 취향, 정체성과 이념에 대한 다양성이 너무나도 긍정적인 가치로 통하게 된 시대가 되어, 그러한 사상적 관점에서의 차이점도 관계의 지속성을 저해하는 큰 요소라 하겠습니다. 덧붙여 세 번째 원인으로, 인간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의 폭발적 증가 또한 한가지 원이 되겠습니다. 수많은 미디어(TV, 인터넷,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 쌍방향 게임)들 덕분에 사람들은 더이상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을 덜 부리게 되었고, 상대방의 대한 불만이 있을때, 대화로 그것을 풀고 관계를 지속하려는 노력도 덜하게 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인간관계의 간절함이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위의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구조적, 근본적으로 인관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질문자께서 말씀주신 개인적 방법 밖에는 없는데, 이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관계의 기본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의 기본(다름의 인정 / 약속의 성실한 이행 / 신의성실의 원칙 이행 / 비밀의 엄수 / 감사의 표현 / 실수의 인정과 사과 / 경청 / 괌심과 격려 등)을 지키는 것만이 인간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 됩니다. 그러니, 이는 서로가 같이 지켜야 하는 원칙으로, 혼자만 지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이러한 기본들을 지켜간다면,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설 자리는 줄어들게 될 것이고, 또한 관계의 지속성은 지켜지게 될 것입니다.위와 관련하여, 법정 스님의 수필 한 구절을 소개 할 가 합니다.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그리고 멀지 않아 한 가정을, 지붕 밑의 온도를 형성할 것이다. 또한 그 온도는 이웃으로 번져 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너의 “있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누이야, 이 살벌하고 어두운 세상이 너의 그 청청한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살아갈 만한 세상이 되도록 부디 슬기로워 지거라. 네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라. 그것이 곧 너 자신일 거다." (아름다움-낯모르는 누이들에게)이 구절에서 시사하는바 대로, 내가 기본을 지키면, 모든 사회로 그것이 퍼져, 모든 사람이 기본을 지키는 사회가 될것입니다. 따라서 이간 관계의 복원과 지속도 가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