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시조에는 연과 행의 구분이 있을까요?
시조의 경우 현대의 시처럼 초장 중장 종장의 45자 내외로 구성되어있기에 따로 연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조의 경우에도 평시조는 한 수의 시조가 여러 편이 합쳐져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연시조라고 하며 시조 한 수가 전체 작품에서는 하나의 연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수의 초장, 중장, 종장은 각각의 행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최초의 연시조는 조선 세종 때 맹사성이 지은 입니다. 그리고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 그리고 주세붕의 「오륜가」, 정철의 「훈민가」 등도 대표적인 연시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유교적인 사상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윤선도는 문학적인 재미, 상상력, 표현의 다양성을 나타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오우가」 여섯 수, 「견회요」 다섯 수, 「만흥」 여섯 수, 「어부사시사」입니다.
Q.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과 후의 시가문학은 어떤변화를 가지고 있나요?
조선시대의 시가는 전기는 평시조라 불리는 사대부시조가 중심을 이루어 충절, 자연진화, 인격수양 등 유교적 내용이 주를 이루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사설시조라는 명칭의 평민시조가 등장하면서 전후 평민들의 생활상, 고위층에 대한 비판, 해학 등의 내용이 발달하였습니다.시조와 가사 문학 형태로 시조는 계속 시의 형태로 바전하였고, 가사의 경우 내용상 교술적인 형태도 띠고 있어서 운문에서 산문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도 있었다 봅니다.
Q. 아부하는 사람들한테 왜 용비어천가를 부른다고 하나요?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입니다. 내용은 세종의 직계 할아버지 여섯 분의 행적을 노래한 것인데, 그들의 위상이 하늘의 명을 받들었다는 중국의 제왕처럼 묘사하여 이 여섯 선조 역시 하늘의 명을 받았다는 것을 칭송하는 노래입니다. 왕명에 따라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짓고 빅팽년, 성삼문, 이개가 주석을 달았고,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이 발문을 하였는데 당시 그 글이 너무 왕족을 칭송하는 낯간지러운 아부의 글이라 그 이후 누군가에게 아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 온 것 같습니다.
Q. 고려가요와 시조는 음보율이 어떻게 되나요?
고려가요는 보통 3(4)/3/2의 3음보이고, 예) 살어리/살어리/랏다 청사에/살어리/랏다 머뤼랑/다래랑/먹고 청산에/살어리/랏다 시조는 3(4). 4조가 기본 운율 /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한 장 ; 2구, 4음보)입니다. 특히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절로 나뉘는데 종장의 첫음보 3글자는 고정이고 , 둘째음보는 5글자 이상을 씁니다.예) 태산이/높다하되/하늘 아래/뫼이로다 오르고/또 오르면/못 오를리/없건만은 사람이/제 아니오르고/뫼만 높다/하더라
Q. 유명한 북한의 문학작품들도 있는지 궁금해요
광복 직후의 북한의 문학은 자유롭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산주의 사상이 자리를 잡게 되고 그것을 선전하는 쪽으로 문학의 방향이 고착화됩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체제를 선전하는 방향으로만 공식적인 작품이 나오게 됩니다. 북한문학의 주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 활동과 혁명가정을 내용으로 한 작품’, ‘혁명전통을 주제로 한 작품’,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사회주의 건설을 주제로 한 작품’, ‘계급교양을 주제로 한 작품’, ‘조국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신들의 체제 유지 및 선전, 당에서 추구하는 사업에 대한 선전 등을 내용이므로 광복 이후는 유명한 문학가나 문학작품은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광복 이전에 한반도 북부에서 활동했거나 출신인 작가 중 떠오르는 인물은 시인 백석 백기행입니다. 한국적 모더니즘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습니다. , , ,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가 송영 송무현은 소설 뿐만아니라 극작가로 유명하였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