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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비단벌레135
단아한비단벌레13523.10.10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행해졌던 무역과 현대 사회의 대한민국의 무역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행해졌던 무역과 현대 사회에서의 우리나라 무역의 차이점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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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치호 관세사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원시사회에서부터 조선 말기까지를 전통사회라고 한다면, 이때의 대외무역은 주로 국가간의 국신물 교환형태(國信物交換形態), 즉 국가 관리의 공무역(公貿易)이 우리 나라 대외무역의 지배적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정치적 의례 내지는 인접국 상호간의 교린관계에서 국가 관리형태의 공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강대국이었던 중국과의 무역은 조공형식의 공무역이 이루어졌고, 기타 약소국과의 무역은 국가간의 평화적인 교린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입공(入貢) 형식의 공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전통사회의 대외무역은 주로 사절단의 왕래를 통한 국신물 교환형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전통사회의 대외무역은 국신물 교환형태의 공무역 중심이어서 사무역(私貿易)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관허형식 또는 관의 묵인 아래 사무역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사절단 일행에게 변칙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던 사무역을 비롯하여 국경지대의 호시무역(互市貿易:두 나라 사이의 교역) 및 왜관무역 등에서 묵인되고 있었던 사무역, 그리고 예외적인 것이기는 하였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장보고(張保皐)에 의한 청해진무역 등은 모두 사무역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사회에서는 공무역과 사무역 외에 국가의 감시를 피하여 밀무역도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사회의 대외무역은 원칙적으로 국가 관리의 공무역만이 인정되었고, 밀무역은 물론 사무역도 금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개화기에는 열강과 개국 통상조약을 맺어 근대적인 무역관계가 형성되어갔으나,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되지 못해 우리 나라의 대외무역은 이른바 조계지무역(租界地貿易:외국인 거주지역의 무역. 외국의 경찰·행정권이 행사됨)이라는 왜곡된 형태의 근대무역이 전개되었다.

    다시 말하면, 개화기의 대외무역은 편무적(片務的:한쪽에서만 의무를 짐)인 수호통상조약의 제약과 속박, 민족상인 자본의 미성숙 등으로 조계지의 외국상인이 자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 나라의 대외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외국상인은 주로 선진국 제품의 중개무역에 종사하였으므로 개화기의 대외무역은 중개무역 형태의 조계지무역이 전개되고 있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민족항일기에는 국권의 상실로 우리 나라의 대외무역은 전형적인 식민지무역 관계로 다시 편성되었다. 즉,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나라의 대외무역은 일본의 공산품과 우리의 공업원료 및 식량 등을 일본상인이 독점 교환함으로써 전형적인 남북무역 형태의 식민지무역 관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1930년대 후반부터는 통제경제 체제의 강화와 더불어 관영무역 형태의 식민지무역이 전개되었다.

    광복 후의 대외무역은 국권의 회복과 더불어 비로소 민족상인에 의한 자유로운 상사무역(商事貿易:당사자의 양쪽 또는 한쪽에 대해 상행위가 되는 무역)이 전개되었으나, 광복 직후부터 1960년대 이전의 과도기에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의 악순환과 산업구조의 후진성 등으로 인해 무역 규모도 보잘것 없었고 전형적인 남북무역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의 고도 성장기에는 수출 제일주의 및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의 추진 등으로 우리 나라의 대외무역은 급속히 양적으로 확대되고 더불어 무역구조도 질적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하여 철강·석유·원목·원당 등 공업원료를 수입하여 이를 가공한 뒤 다시 수출하는 가공무역 형태로 전환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홍재상 관세사입니다.

    현대사회가 있기 이전의 물품의 교역은 대부분 공무역(무역의 주체가 공공기관이 되는 경우로서 정부가 출자하거나 또는 직접 무역공사를 설립하여 무역을 수행하는 형태)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사무역도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러한 경우 상단을 구성해 실제 현지에 방문하거나 국경의 특정지역에서 만나 물품을 교환하고 판매하는 형태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151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진솔 관세사입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고려시대의 경우에는 정부차원에서의 무역이 흥하였고 사무역은 비중이 적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조선 말기로 넘어가면 사무역이 증가하게되었고 보통은 중국이나 일본과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사무역의 비중이 거의 대부분이며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과 무역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답변이 도움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무역분야 전문가입니다.

    먼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에는 국가가 무역의 주체였습니다. 국가는 사절을 보내거나 관청을 설치하여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였고, 사무역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 기업, 국가 등 다양한 주체가 무역에 참여합니다.

    또한, 과거에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 주로 무역을 하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무역을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