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무역 이미지
무역경제
무역 이미지
무역경제
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12.23

조선 초기 무역과 조선 후기 무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조선시대 무역을 하는데 있어서 시대별로 차이가 많이 날 것 같던데 조선 초기화 조선 후기 무역의 차이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내용을 알고 싶어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치호 관세사입니다.

    조선 초기와 조선 후기의 무역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명목상 사대관계
      조선 초기는 명나라와 명목상 사대 관계 속에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공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조선 후기에는 국내의 상공업 발달에 힘입어 청, 일본과의 대외 무역이 활기를 띠었습니다.

    2. 대외교역시장
      조선 후기에는 중강 개시, 후시(의주 부근), 책문 후시(중국 봉황성) 등에서 공적 무역과 사적 무역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3. 밀무역 증가
      조선 후기에는 밀무역이 증가하면서 책문 후시 등의 무역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로 인해 조정에서는 세금을 받고 공인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전경훈 관세사입니다.

    조선은 태종 10년(1408년)에 쇄국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쇄국 정책은 외국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조선은 중국과 명나라, 일본과 임진왜란 이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네덜란드만과 교역을 허용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업적 무역이 발전했습니다. 조선은 상업 활동을 규제하는 정책을 완화했고, 상업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상업 활동은 크게 활성화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선 초는 조공무역으로 중국 명나라때 주변 국가를 중국 문화권으로 끌어들이고 주변국들은 이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무역 형식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조선후기는 공행무역 특히 청조말 외국기업과 무역이 주류를 이룬것으로 보입니다

    조선후기에는 또한 대동법의 시행으로 공인이 등장하면서 수공업이 발전하게 되는데 수공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따라 물품의 풍족해지고 이를 판매하는 상인들의나타나 무역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홍재상 관세사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존재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시사회에서부터 조선 말기까지를 전통사회라고 한다면, 이때의 대외무역은 주로 국가간의 국신물 교환형태(國信物交換形態), 즉 국가 관리의 공무역(公貿易)이 우리 나라 대외무역의 지배적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대외무역은 명나라와 청나라 등 중국과의 무역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대명무역은 사절을 통한 공무역과 사절 일행의 사무역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사무역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건국 초 명나라측이 재정상의 이유 등으로 3년1사를 고집하였으나, 조선측은 사대외교 및 선진문물의 도입이라는 입장에서 1년3사를 요청하였다. 결국, 정종 때에 이르러 1년3사의 요청이 관철되어 그 뒤 사절의 파견이 빈번하여졌다.

    대일무역도 사절을 통한 국신물 교환형태의 공무역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조선 전기는 일본 정부가 직접 사절을 파견하기도 하였으나 후기부터는 주로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일본국을 대표하여 세견선(歲遣船)을 보내옴으로써 양국간의 공무역이 이루어졌다. 이때의 대일 수출품은 면포·인삼·대장경·미곡 등이었고 수입품은 동·유황·소목·후추·금·은 등이었다.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세계 각국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공무역 관계가 지양되고 자유로운 상사무역을 주축으로 하는 근대적인 무역관계로 개편되어갔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개국한 일본은 그들이 구미제국으로부터 강요당한 무력외교의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1876년 2월 우리 나라에 불평등 개국조약을 강요하였다. 그 뒤 우리 나라는 1882년 5월 ‘한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을 계기로 하여 구미열강에 대해서도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우리 나라의 대외무역은 통상조약의 규정에 따라 민간인 무역을 주축으로 하는 근대적인 무역관계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나라는 근대무역에 대응할 만한 여러 여건이 성숙되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 관세사입니다.

    조선초기에는 감합무역 형태였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과 이루어진 조공무역을 지칭합니다.

    조선후기에 대청 무역을 공심으로 공무역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은이나 인삼 등을 수출하고 비단이나 약재 등을 수입했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무역분야 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무역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는 중국의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명나라는 조선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조선의 무역을 통제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에는 대외 무역이 크게 제한되었습니다. 중국과의 무역은 공물을 바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일본, 명나라, 여진과의 무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조선 후기에는 무역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는 조선의 경제 발전과 국력 증강을 위한 것으로, 중국의 청나라와의 무역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명나라, 여진과의 무역도 활발해졌습니다.

    또한, 조선 초기에는 중국이 조선의 유일한 무역 상대국임에 따라, 조선은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중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했습니다. 중국은 조선에 비단, 도자기, 서적 등을 수출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명나라, 여진과의 무역도 활발해졌습니다. 조선은 중국, 일본, 명나라, 여진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했고, 조선산 물품을 수출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진솔 관세사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자유무역이 금지되어있기에 정부주도의 무역이 흥하였습니다. 다만 후기로 넘어갈 수록 중국과의 사무역이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사무역의 규모가 공무역의 규모보다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부를 가지게된 중인들이 많아졌으며 이에 따라 신분사회가 약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답변이 도움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