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송종민 과학전문가입니다.
배와 가슴에 칼을 맞아도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입에서 피를 흘립니다. 실제로도 그럴까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문의해보니, 뜻밖의 답변이 되돌아왔습니다. 복부와 가슴 쪽에 칼을 맞은 주검은, 입안에서 다량의 혈액이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대다수가 피를 토하기도 전에 사망한다는 겁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의 한 임상교수는 “입에서 피가 나오는 게 가능한 상황은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입안이나 목에 상처가 나는 경우, 그리고 순간적인 장기 손상으로 심각한 수준의 내출혈이 일어나 체내에 고인 피가 식도나 기도를 통해 역류하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답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거지요. 물론 문의하신 내용이라면 후자에 속하겠습니다. 위장 손상이라면 식도를 통해, 폐 손상이라면 기도를 통해 피가 나올 수 있답니다. 그럼에도 그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전날 마신 술이 과해 칼을 맞는 동시에 오바이트가 쏠린 게 아니라면, 위 속에 고인 혈액의 양도 충분해야 합니다. 순간적으로 뜨끈한 피가 위에 고이니까 밖으로 토해내게 되는 겁니다. 공복이 아니라면 음식물이 섞여 나오겠지요. 상처 부위가 위가 아니라 간이나 대·소장 등 다른 장기라면 실제 피를 토할 가능성은 더 희박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린답니다. 결국 칼을 맞는 순간, 입에서 피를 흘리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처절한 모습은 어디까지나 상황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장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죠.
입에서 흐르는 피의 색상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혈액은 크게 동맥혈과 정맥혈로 나뉩니다. 산소를 가득 담고 있는 동맥혈은 붉은색, 이산화탄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정맥혈은 검붉은색입니다. 우리 몸의 주요 장기에도 동맥혈과 정맥혈이 함께 흐릅니다. 하지만 내상을 입고 (여러 조건이 ‘지극히 우연히’ 들어맞아) 입에서 피를 토한다면, 그건 정맥혈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칼을 맞고 한참 뒤에, 붉은 피가 아니라 검붉은 피를(미처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과 함께) 토하는 게 비교적 정확한 묘사라는 겁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심장을 직접 칼로 찔린 경우에는 소화기관과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입에서 피가 나올 수 없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