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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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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불경 언해를 많이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에 월인석보나 석보상절이나 금강경언해와 같이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번역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불경 언해를 많이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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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불경 언해가 많이 이루어진 이유는 조선초기에는 불교가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경은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어 일반 백성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훈민정음은 백성들이 한자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문자였기 때문에 불경을 한글로 번역해 불교의 교리를 널리 알리고자 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새로운 문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불경의 언해는 훈민정음의 실용성을 검증하고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했습니다. 조선 초기 왕실은 불교와 깊은 관계를 유지했고 왕실에서는 훈민정음을 활용해 불경을 번역함으로써 불교 교리를 확산하고 백성들의 신앙심을 고취하려 했습니다. 이와 같이 불경언해는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 중 하나인 백성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승려 신미(영동 김씨)가 집현전 학자로 활동했었다는 영동 김씨 족보에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 기록에는 없으나 그랬다면 그 훈민정음을 활용하여 양반 외 계급으로의 포교활동을 위해 불경 번역을 하여 배포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사상이 주를 이루었고, 불교를 배척하였기에 고려시대에 비해 포교 활동이 원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불경 또한 한자로 기록되어 사용되었기에 승려들이나 학식이 있는 이들 외에는 불경을 일상에서 탐독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훈민정음의 창제는 불경의 내용을 양반 외 계급에 포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판단됩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전문가입니다.

    양반들은 숭유억불을 주장하긴 했지만

    백성들은 수천년동안 뿌리내려 아예 민간신앙화 된

    불교적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불교 대국이던 고려시절을 기억하는 옛 세대도 아직 잔뜩있는 조선 초기였으니까 더욱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쓰기 쉬운 글을 알린단 원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교를 활용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유가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기에 불경 언해본은 훈민정음을 보급하고 학습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조선은 당시 초기 였기에 유고를 숭상 하면서도 아직도 불교를 믿는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태영 전문가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불경을 한글로 번역한 주된 이유는 백성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쉽고 널리 전파하여 종교적 교화를 이루고, 한글의 보급과 정착을 촉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불경 언해는 백성들이 불교 경전을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종교 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한글 사용을 장려하여 새로운 문자의 확산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