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해동성국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해동성국은 발해를 대상으로 한 말이 맞습니다.중국에서는 이러한 발해를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을 가진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m71_0040_0010_0030_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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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장군은 실존 인물 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료에 따르면 온달 설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아본 결과 온달은 실존 인물이며, 그가 평원왕의 공주와 결혼한 것도 사실일 가능성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2912&localCode=krcn&menuGbn=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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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문고 제도는 어떤 의미로 만든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문고 제도는 조선 시기에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가진 자에게 이를 소송할 수 있도록 대궐에 북을 달아 알리게 하던 제도입니다.신문고는 1401년(태종) 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303700&code=kc_age_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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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라는말이 어떻게 나온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레카(Eureka)는 뜻 밖의 발견을 했을 때 외치는 단어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던 중 욕조에 들어가서 욕조의 물이 넘쳤을 때 외친 것을 기원으로 본다고 합니다.유레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낱말 εὕρηκα heúrēka에서 유래하며 "유레카"의 의미는 "나는 (그것)을 찾았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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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일을 하면 큰집간다,콩밥 먹는다..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큰집이라는 의미는 어떤 곳에 익숙하게 자주 드나드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교도소를 밥먹듯이 들락거리는 죄수들에게는 교도소가 큰집일 것입니다.지금은 아니지만 현대식 교도소가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쌀의 가격이 비싸 쌀의 비중이 아주 적고 콩이 많은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콩밥먹는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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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말년에 왜 알려진 기록이 없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장영실이 말씀하신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처벌(곤장)후 다시는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데, 그 이후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다만, 다음의 심층분석내용을 보심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https://if-blog.tistory.com/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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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실제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꺽정(林巨正)은 조선 명종임금 시절에 실존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생연도는 미상이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0년 전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원래는 백정출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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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은 조선시대부터 만들어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약은 왕족 또는 사대부가 죄를 지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극약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조선은 유교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큰 수치로 알았기 때문에 참수형이나 교수형과 달리 사대부에게는 신체를 보전할 수 있도록 독약으로 죽는 특혜(?)를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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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백두산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화산의 폭발이 약 100년전 백두산에서 마지막으로 관측되었습니다.다음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8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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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거수경례의 유래를 알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수경례에 대한 기원(유래)에 대하여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중세 유럽에서 기사들이 머리에 쓴 투구의 '바이저(앞면 보호대)'를 올리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실제로 중세의 기사들은 결투를 하기 전에 자신의 가문을 소개한 후 시작했는데, 이때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바이저를 올리는 동작이 군대 거수경례의 유래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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